‘농업 노예’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노동기구와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인 농업무역정책연구소가 최근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농업 노동자들과 관련된 보고서를 내놨다. 대규모 농장이 많은 중남미와 아시아 지역에서 농업 노예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 관계자와 농업계 전문가들은 국내에도 ‘농업 노예’ 상태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보고 이들을 관리ㆍ감찰할 만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농업 현장의 근로ㆍ복지 실태 점검을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수준의 정보시스템과 스마트팜 설비를 통해 지자체ㆍ농정 당국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권역별 '노예 노동자' 수(출처=국제노동기구)

국제노동기구와 농업무역정책연구소 “현대판 농업 노예 실태 심각하다” 주장

국제노동기구(ILO)가 9월 발표한 ‘현대판 노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노예 상태’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은 총 4029만 명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924만 명, 아메리카는 195만명,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은 2499만 명, 유럽과 중앙아시아는 359만 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강요된 노동’(Forced labor)과 ‘강요된 결혼’(Forced marriage)이 포함된다. 노예 상태의 노동자들 중 24.7%는 어린이들이었다. 국제노동기구는 강요된 노동ㆍ강요된 성적 착취ㆍ국가 차원의 노동 착취ㆍ강요된 결혼을 모두 ‘노예 상태’로 규정했다.  

국제노동기구는 ‘노예’ 상태에 이른 농업 종사자들이 전세계적으로 19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특히 플랜테이션(기업화된 대규모 농장)이 많은 중남미 대륙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농업 현장의 인권 유린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농업 분야 비영리 연구 기관인 농업 무역 정책 연구소(Institute for Agriculture and Trade Policy)는 지난 8일 발표를 통해 “일 평균 20시간씩 일하는 중남미 지역 농장들이 많다”며 “전세계적으로 농업 노예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 시장 규모는 1500억 달러 가량”이라고 추산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경우 농업 노예들은 16만 1100명이다. 원래 브라질 정부는 플랜테이션 내 농업 노동 실태를 해마다 보고해 왔으나 지난 2014년부터 보고서 발간을 중단했다. 농업무역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자국의 농업 노동 상태를 제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 브라질 정부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육가공 기업인 JBS도 ‘농업 노예’들에게 일평균 20시간 이상의 노동을 시키고 있다. JBS가 생산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공정 무역 제도나 감찰 제도 등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미국 현지로 수출되고 있다.

▲ 1933년 칼 우드슨이라는 미국 작가가 그린 노예 노동 풍자화(출처=Better work)

농식품부와 농업계 전문가들 “국내 현장에도 농업 노예 문제 도사리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 2014년 신안 섬노예 사태처럼 빚 때문에 강제 농어업 노동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된 근로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농업 근로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63조 1항에 의해 휴식ㆍ휴일 근무와 관련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한윤 하얼빈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국내 농업 현장에 유입된 노동자들이 식비도 보장받지 못하고 월 80만원~140만원의 낮은 월급을 받고 있다”면서 “하루 10시간 근무에 휴게시간은 30분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한 교수는 “현장에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칼같이 근무 시간을 지키지만, 외국인 농업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농장 내 외국인 노동자들은 야근을 하지 않으면 농장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육체적 모욕까지 당할 수 있다. 국내 농촌의 이주노동자들은 2017년 8월 기준으로 2만 3000명에 이른다. 

장근욱 한국농어촌빅텐트 간사는 “신안 섬노예처럼은 아니어도 제대로 된 근로 계약 하나 없이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에 처한 이주 노동자가 많다”며 “이들의 불만이 나중에는 농어촌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국내 농촌에서 거의 '노예'에 가까운 대우를 받고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출처=business-humanrights.org

문제는 방문식 검사.. 시스템 장착 필요해

국내외에서 ‘농업 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원인 중 하나는 대부분 정부 당국의 방문 조사에 의해 현장 점검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장정수 꿈이있는 농장 대표는 “농업 노예는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농장주의 탐욕이 빚은 사태”라며 “시골에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쉬쉬하며 묵인해주기 때문에 아무런 윤리적 책무감 없이 죄를 저지르는 농장주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여러 번 검사를 하더라도 ‘그 순간을 모면하면 된다’는 정서가 퍼져 있는 것도 문제다. 김영택 전 경북도의원은 “방문식 검사는 검사관의 주관적 편의대로 조사가 흘러갈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권 유린 실태를 점검하기 어렵다”며 “당장은 돈이 들더라도 농장 모니터링 시스템이나 기본적인 스마트팜 설비를 통해 농업 임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올람 인터내셔널(Olam International) 등이 농장 관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농장 생산량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 복지 수준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농업 노동자 실태 개선도 예상돼

농어촌 현장에서는 최저임금 시급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로 유명하다. 농촌에서는 월 20일 일하면 140만원 이상을 받게끔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숙식비를 공제한 상태에서 110만~12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고 악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이인규 NIR 랩 대표는 “내년부터 강화되는 최저임금제도가 농장주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맞지만 농업 노동자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