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농촌의 일자리 감소와 경작지 포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력 소요를 줄이는 스마트팜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감귤처럼 노동력 투입량이 많은 품목일수록 스마트팜을 통한 기계화 관리가 효율적이다. 일본 에히메 현에서는 지역 농민들이 함께 투자해 수원지와 도수관, 액비(액체비료) 등을 공유하며 농장을 체계화해 관리하는 ‘단지형 마루도리(マルドリ)’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단지형 마루도리 방식의 개요(출처=일본 농림수산성)

농가들이 설비 공유하는 ‘단지형 마루도리’식의 이점

일본 농림수산성 산하 농연기구에 따르면,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 시에 위치한 오치 이마바리 영농조합(越智今治農業協同組合)은 지난 2015년 6월 독특한 공동 영농 방식을 도입했다. 감귤 농가 7가구가 연합해 수원지와 관수시설, 액비저장탱크 등을 공유하며 기계화된 컨트롤러로 농장을 가동하는 스마트팜을 세운 것이다. 농장 규모는 122아르에 이른다. 영농조합은 2년간 실증사업을 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다른 가구까지 함께 조합원으로 받기로 했다.

에히메 현은 일본에서 감귤로 제일 유명한 지역이지만 최근 들어 고령화와 일자리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농촌 고령화로 감귤농장 10 아르 당 노동 시간은 점점 줄고 있지만 물가 상승으로 생산비는 오히려 뛰고 있다. 그래서 힘을 덜 들이고 농장을 관리할 수 있는 자동화ㆍ기계화가 절실하다.

단지형 마루도리 방식은 수원지와 점적관수(농업용수와 양액 등을 파이프로 작물에 공급하며 필요한 양만큼만 뿌리는 재배방식)를 위한 시설, 액비 저장탱크, 멀칭 비닐 등을 지역민들이 공유하며 사용하는 모델이다. 원래 개별 농가들이 자기 농장의 생산 최적화를 위해 도입하는 시설들이지만, 지역 농민들이 함께 시설에 투자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오치 이마바리 영농조합의 경우에는 10 아르당 70만엔(한화 700만원)의 투자비가 들어갔다. 농가 1곳당 지출 비용은 175만엔(한화 1750만원)이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농가들이 마루도리 시설을 개별로 도입할 때보다 3분의 1 정도 규모다.

▲ 오치 이마바리 영농조합이 채택한 단지형 마루도리 방식을 견학하는 일본 농림수산성 관계자들(출처=일본 농림수산성)

기술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자 조직화도 중요해

오치 이마바리 영농조합은 시설 공유뿐만 아니라 농산물 판매와 유통을 위한 산지조직도 꾸렸다. ‘카미우라 마루도리 시설 모임’을 만들어 조합원들이 재배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고 농산물을 함께 내다팔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이다. 외부 기업의 도움도 빌렸다. NEC 계열사인 NEC 솔루션 이노베이터가 개입해 토양 정보 센서와 태블릿 PC로 농장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마루도리 시설을 잘 굴리기 위해서는 농장을 여러 구획으로 나눠서 체계적으로 비료 공급과 물 공급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오치 영농조합은 총 18개 구역으로 농장을 나눈 다음 매일, 2일 1회, 3일 2회 식으로 로테이션 패턴을 적용해 물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마을에서 기술에 밝은 농민이 전체적인 패턴을 관리한다. 오치 영농조합은 이 관리자를 ‘기술 리더’라고 부른다.

비료 공급은 물 공급보다는 조금 까다롭다. 상당수 농가들은 조생귤ㆍ온주밀감ㆍ아오시마 등 각기 다른 품종을 포트폴리오로 나눠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품종 별로 시장 가격 동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비(비료 공급) 기간을 각각 나눠서 비료를 줘야 한다. 오치 이마바리 영농조합은 각 품종별로 생육 단계를 정밀하게 측정한 다음, 물 공급 때와 마찬가지로 구역별 시비를 했다. 기술 리더 이외에 회계 책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오치 영농조합은 외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생산자들이 공동 부담하는 식으로 시설비를 배분했다.

김재훈 '식탁이 있는 삶' 대표는 “오치 이마바리 영농조합 모델은 공유 경제를 통해 첨단 농업 도입 비용을 대폭 절감한 사례”라면서 “스마트팜 초기 비용 부담을 힘들어 하는 농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참여 농가가 늘어날수록 스마트팜 도입 비용도 감소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산지 조직화도 되는 모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