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상비의약품 품목확대에 반대하는 대한약사회 임원이 자해소동을 벌이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에도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는 합의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지난 3월 열린 첫 번째 회의 이후로 총 5번의 회의를 열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달 중으로 6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윤선 기자

보건복지부는 4일 제 5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비공개로 열고 안전상비의약품 품목확대를 논의하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회의 도중 감정이 격해진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은 자해를 시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해소동은 사실”이라면서 “(강 위원장이) 비공개 회의에 칼을 갖고 들어와  약사회 측의 입장을 주장하다가 칼을 꺼내들어 자해를 시도했으나 바로 진압돼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논의를 하는 데 이런 일이 벌어져 많이 안타깝고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현재 13개 품목 도입…최대 도입 20개 이내 가능

12월 기준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해열진통제(5품목) ▲소화제(4품목) ▲감기약(2품목) ▲파스(2품목) 등 총 13품목이다. 무한정 품목 확대가 가능한 것은 아니며 개정 약사법에 따라 약국 외 판매 의약품의 범위는 20개 이내가 돼야 한다.

지난 2012년 5월2일 감기약, 해열제 등 일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같은해 11월15일부터 안전상비의약품의 약국외 판매가 가능해졌다.

안전상비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중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하기 위해 환자 스스로 판단해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을 말한다. 지정된 곳에서 구매할 수 있고 한 번에 1통씩만 판매할 수 있다. 12세 미만의 어린이나 초등학생은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어른이 구매해야 한다. 대상품목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안전성 기준을 모두 통과한 의약품 가운데 소비자의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인 품목을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통해 선정했다.

보령제약 ‘겔포스’·대웅제약 ‘스멕타’ 도입 논의 무산

품목확대 유력 후보로 떠오른 것은 보령제약의 제사제인 ‘겔포스’와 대웅제약의 지사제인 ‘스멕타’ 등 2품목이었으나 제약사 측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최상은 고려대 약학대 교수가 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한 연구에 따르면 지사제와 제산제는 소비자가 편의점에 도입하길 원하는 품목 중 상위권에 포함됐다.

약사회는 공식적인 반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약사회 관계자는 “공식적인 답변을 준비하고 있고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안전상비의약품 도입 13품목.표=이코노믹리뷰

약사회, “편의점약, 국민 건강 위협”…근거 없어

약사회는 그간 안전상비의약품 도입을 자체를 꾸준히 반대해왔다. 약사의 지도를 받지 않은 채 국민이 편의점에서 약을 사 오남용할시 건강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지난해에는 2014년~2015년 2년간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 약사법 위반실태를 공개하기도 했다. 위법 사항의 57%는 동일제품을 2개 이상 판매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소비자 건강에 위해를 끼쳤다는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었다.

복지부 관계자도 이에 대해 “현재까지 부작용 자료나 임상경험을 의학전문가가 봤을 때 특별한 (건강에 미칠)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물론 반대의 논리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주요 선진국, 편의점약 13개 이상”

영국,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드럭스토어 등 약국이 아닌 곳에서 우리나라보다 많은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편의를 위해 해외 사례처럼 안전상비의약품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일률로 말하긴 어렵지만 미국이나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우리나라의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수인 13개보단 많은 의약품을 약국 외에서 판매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관계자는 해외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우리나라와 미국 등 외국은  병원 접근성이나 보험 체계, 유통 구조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해외에선 안전상비의약품을 많이 팔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위원회는 회의 종결 시일을 정하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위원회 의견은 최종 결정사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부에 건의하는 의견일뿐”이라면서 “좀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위원회 회의는 이달 중 열린다. 위원회 참석자는 ▲강윤구(위원장) 고려대학교 보건의료법정책연구센터 소장 ▲강민구 우석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김연숙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부회장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 ▲염규석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이미지 동아일보 기자 ▲장인진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전인구 동덕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조경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교수 등 1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