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얼어붙었던 NPL(비수익채권, Non Performing Loan) 시장이 올해는 새로운 투자 모형을 만들며 주목을 끌었다. 큰손 투자자들과 업계에서는 NPL 시장이 얼마나 확대될 것인지 관심사다.

NPL 시장이란 부실채권 거래시장을 말한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매각하는데, 이 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시장이 NPL 시장이다. 특히 부동산담보대출을 투자상품으로 한 NPL 시장은 한때 주부들까지 알 정도로 투자열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NPL에 투자하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을 모아 투자 강의를 하기도 하고 투자금을 모은 경매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널리 알려진 용어와 반대로, NPL 투자는 높은 경매 법률지식과 분석능력 등 전문지식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 때문에 투자자를 속이고 투자금 사기행각을 벌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경매가 가능한 담보부 부실채권뿐만 아니라, 연체된 신용대출 부실채권도 한때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투자자가 부실채권을 아주 저렴하게 매입해 채무자를 혹독하게 추심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NPL 시장이 과열되면서 당국은 NPL 시장을 규제했다. 금융당국은 개인이 직접 NPL 채권을 매입하지 못하도록 지난해 7월 대부업법을 개정했다.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측면에서 금융 당국이 채권추심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등 혹독한 채권 추심을 막기 시작해 신용 대출 NPL도 수익률을 내기 어렵게 됐다.

기업 NPL 시장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기업들의 회생절차가 늘어나면서 부실채권을 보유하는 은행도 매각을 꺼리고 투자자도 매수를 꺼렸다. 법무법인 대율의 안창현 변호사는 “기업이 회생절차에 돌입하면 담보부 채권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경매가 금지 또는 중지된다”며 “경매를 통해 투자수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채권을 일반 투자자가 매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은행이 유통시킨 NPL 채권은 5조원 이하의 규모였다”며 “이는 2010년 은행권이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이슈로 NPL 매각이 본격화된 이후로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태동하는 NPL 시장

기업구조조정이 활발해지면서 NPL 투자자들은 부실채권의 증가가 투자 기회의 확대로 이어질 것인지 주목하게 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에 기업구조조정에 실기하지 않겠다고 장담한 만큼, 내년에는 NPL 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의하면 2017년 3분기 말 국내 부실채권 잔액(장부가 기준)은 20조5000억원이다. 부실채권 비율은 1.15%로 전분기(21조8000억원, 1.25%) 대비 0.10%p 내려간 수치다. 채권규모는 작년 3분기 29조1000억원보다 8조6000억원이 감소한 규모다.

최근 3년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2014년 24조2000억원, 2015년 30조원, 2016년 29조1000억원으로 평균 27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부실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NPL 시장에는 매년 5조~6조원 규모의 신규물량이 공급돼 왔다. 또 경영권을 담보하는 주식 거래를 통한 부실기업 인수합병(M&A)도 NPL 시장에 포함된다.

부실채권 인수 및 회수를 위해 은행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유암코의 한 관계자는 “올해 은행에서 공급되는 물량은 12월 결산이 지나봐야 정확하게 산정될 것이나 5조원은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중 은행의 부실채권은 유암코나 대신증권자회사인 대신FNI 등 대형과 중소형의 자산관리 회사가 매입해 이들이 직접 투자이익을 실현하거나 실수요자에게 투자를 유치하는 구조다.

과거에는 유암코나 대신FNI가 양강 구도로 시중은행의 공개매각 부실채권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 NPL 투자업체를 비롯해 자산운용, 캐피탈, 저축은행 등 중소투자가 가세함에 따라 양자구도에서 다자구도로 재편 중이다. 이 때문에 각 대형 자산관리 회사도 부실채권 낙찰 경쟁이 치열해진 양상이다.

한국은행이 내년 국내 경제 성장률이 3%일 것으로 내다봤지만 부실채권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이들은 미국발 금리인상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한국은행의 금리인상과 대출 이자율을 상승시키면서 실물경제의 하락과 더불어 NPL채권의 공급량을 증가시킬 전망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금리인상은 NPL 거래 가격의 하락을 가져온다. 조달금리 상승으로 자본비용이 증가하고, 위험상품 투자가 위축되면 NPL 채권의 거래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이 회계업계의 분석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NPL 시장의 경쟁구도가 다각화되었지만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NPL 시장에서 공급물량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부실채권 시장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기업대출채권이다. 올 2분기 총 21조8000억원의 부실채권 중 기업 부실채권은 20조원으로 전체 부실채권의 91%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가계 부실채권은 1조6000억원, 신용카드 부실채권은 2000억원을 차지했다.

기업의 부실채권은 주로 메이저 자산관리 회사가 투자해 시세차익을 남기거나 기업구조조정과 M&A를 통해 투자 이익을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