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단 체육대회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장기자랑 논란이 파문이 일면서 병원 내 ‘갑질’ 문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강도 높은 3교대 근무로 임신의 자율성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간호사와 함께 의료 보조를 수행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이하 간무사)들의 처우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호사 대체 인력 간호조무사 ‘가성비’ 논란…최저 임금도 못 받아

간무사는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일정기관(간호특성화고교, 국공립양성소, 간호조무사양성학원 등)에서 1520시간의 전문간호교육을 이수하고 간호조무사 국가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활동할 수 있다. 간무사는 의료인이 아닌 간호보조인력의 지위를 갖는다.

의료법은 면허가 없는 자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령을 통해 간무사에게 진료보조업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함에 따라 현재 동네의원에서는 간무사가 간호사의 대체인력으로 근무가 가능하다.

간호사는 3년제 전문대학 이상에서 간호학사과정(실습포함)을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의료인의 지위를 얻고 간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다. 간호사는 연간 1만5000명이 배출되고 있으며, 간무사는 3만7000명이 배출되고 있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대체인력으로 '의사의 지시 감독 하'에 진료 보조를 할 수 있지만 이들의  받는 ‘차별대우’는 의료계에서 문제가 돼왔다.  가장 큰 차별은 ‘임금’이다. 간호사에 비해 적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다.  의원급에서 주로 행해지는 채혈, 주사, 환자 안내 등의 일은 숙련되면 간무사도 무리없이 할 수 있어 적은 임금을 주고 채용한다. 춘천의 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간무사로 근무하는 이씨(25)씨는 “보통 동네의원 진료시간은 아침 9시30분부터 7시까지이다. 그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한다”면서 “매일 10시간 이상, 토요일에는 점심시간도 없이 3시까지 근무한다. 3년차지만 연봉은 2000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간호사는 간무사보다 월급이 더 많다. 동네의원에서는 ‘가성비’가 좋아서 간무사를 고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지속가능기업연구회 조중근 회장이 지난 9월 열린 ‘간호인력 부족 해결’ 정책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올해 간호조무사의 평균 연봉은 상위 25%가 2640만원, 하위 25%는 1997만원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법인 ‘상상’의 홍정민 노무사가 지난 3월 열린 ‘간호조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6665명의 간호조무사를 대상으로 실시된 ‘간호조무사 임금·근로조건 실태조사’ 결과 ▲근로계약서 작성과 교부 위반 사례가 48.3% ▲연차휴가수당을 받지 못한 비율은 59.7% ▲휴일근무수당 미지급이 46.6% ▲최저임금 미만 지급이 14.0%로 나타났다. 최저임금과 동일하다는 응답은 29.4%였다.  

보수교육을 할 때 유급으로 근태 처리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7.3%에 불과했으며, 보수교육비를 지원한다는 응답도 34.8%에 불과했다. 간호사와 동일 혹은 유사한 일을 하지만 부당대우를 받는다는 의견은 42.8%였으며, 임금에 차별을 받는다는 답변은 38.9%로 나타났다.

간호사 정규직 채용 비율 85%, 간무사는 35%에 불과 

간무사 근무와 관련 근로기준법 위반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7월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민간중소병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운영 40개소 고용형태 실태연구’에 따르면 간호인력은 정규직 채용 비율이 85%로 다른 직종(간호조무사, 간병지원인력)에 비해 높게 나타났지만, 간무사의 정규직 채용은 35%에 불과했다. 비정규직 채용은 47.5%, 정규직과 비정규직 혼합채용은 17.5%로 집계됐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공개한 ‘의료기관 종별 간호인력 및 보조인력 고용형태’ 자료에서도 간무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상급종합병원이 76.2%, 종합병원은 45.7%로 나타났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자 간무사들이 간무사의 근무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한 이유도 그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이다. 당시 일부 간무사들은 정규직 전환은 물론 간호사 면허를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이를 반대하는 측은  두 직군의 가장 큰 차이가 간호사는 간호대학을 나와 국가고시를 치러야 하고, 간호조무사는 1년 과정의 간호교육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형평성에 어긋난나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입장의 한 업계 관계자는 “수술 담당 간호사들이 경력을 오래 쌓았다고 해서 의사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월 열린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영역은 분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간무사에게만 ‘닭대가리’라고 표현”…병원 내 성희롱, 언어폭력 심각

병원 내 간무사의 성희롱이나 인권침해 수준도 심각하다. 홍정민 노무사에 따르면 조사 결과 조무사의 성희롱 경험은 18.9%, 폭력 피해 경험은 26.1%인 것으로 드러났다. 간호조무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환자 등 방문객과 직접 대면횟수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씨는 이코노믹리뷰에 “환자들은 물론 병원장의 언어폭력, 인신공격은 자주 있는 일이다. 점심시간에 일을 시킨 적도 많다”면서 “간호사와 간무사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간무사에게는 ‘무식하다’, ‘닭대가리’라는 말을 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병원 운영에 대한 회의를 할 때도 간무사는 제외돼 존재감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에 의료계는 간무사 직무에 대한 사회 전반적 인식 개선을 통해 차별적 요소를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부차원에서 간호조무사 관련학과를 확대하고, 양성학원 지원과 입학정원 확대 등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무사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협회 홈페이지에 노무상담 게시판을 운영하면서 협회에 가입한 간무사들의 상담을 돕고 있다. 또 올해 고용노동부로부터 '2017 근로조건자율개선지원사업' 위탁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간무사 근무 병원과 의원을 대상으로 지도점검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노무법인 상상과 함께 간무사 임근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시행, 이를 바탕으로 정부, 관계 부처와 함께 간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도록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협회 관계자는 “내년에는 인권센터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간호조무사 처우개선 문제 뿐만 아니라 성희롱, 성폭행 등 폭넓은 인권문제를 다룰 것”이라면서 “각 시도에 상주하는 상담사를 배치하고 24시간 전화 상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또 전 회원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 교육을 시행할 것이다. 이를 통해 간무사들의 근로권익 향상을 도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회 홍옥녀 회장은 “간호조무사의 처우는 불안하고 열악하다. 고용시장에서 절박한 환경에 놓인 간호조무사 처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과 합의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