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케일럼 체이스 지음, 신동숙 옮김, 비즈페이퍼 펴냄. 

근자에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쏟아져 나오는 서적들과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 미래학자들의 발언들을 백화제방식 발언들을 정리해보면, 두 가지 상반된 견해로 대별할 수 있다.

서평자의 분류법이지만, 대략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맞느냐, 틀리느냐”이다. 뜬금없이 '러다이트 운동' 지지여부를 분류기준을 삼은 것이 노동의 문제가 새로운 경제시대의 핵심요소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남벌로 목재자원이 고갈된 16세기 중엽 석탄이 대체연료로 대두됐다. 하지만 톱만 있으면 되던 나무와 달리 석탄은 생산기술이 필요했다. 그중 펌프 등 탄광의 물을 빼내는 배수기술이 진화하면서 1765년 제임스 와트의 새로운 증기기관이 탄생했다. 동력기계의 발명으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 영국 경공업을 중심으로 큰 변화가 생겼다.

당시 기술혁신은 이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산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과 사회, 문화, 정치체제까지 변화시켰다. 이른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다. 전쟁이 아니라 기계에 의해 세상이 바뀐 초유의 혁명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이 와중에 벌어졌다. 자동방직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공장을 불태우고 기계를 파괴했다.

훗날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많은 경제학자들은 ‘러다이트 오류(Luddite Fallacy)’라며 비판해왔다. 기술과 기계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업을 영구화하지는 않는다는 논리다. 다른 분야에서 그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작년 다보스 포럼이 2020년까지 사무·관리 직종은 476만개, 제조·생산직종에서는 161만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전망했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미국 재무장관 출신 로렌스 서머스도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하다. 자동화는 인류에게 축복이다”라며 ‘러다이트 오류’파(派)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논의의 장(場)이 조금씩 ‘러다이트 지지’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로렌스 서머스도 입장을 바꿨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가 이토록 복잡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이 많은 중산층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사실상 '개종'한 셈이다.

▲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절약형 기술진보의 영향을 집중적으로 받는 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적 실업'이 발생한다고 예견했다. '러다이트 오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를 부정해왔으나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마르크스의 우려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모든 일자리가 사라지는 '노동의 종말'이 온다는 것이다. 사진출처=위키백과

이 책의 저자는 ‘러다이트 오류’파들을 향해 “이제는 다르다”고 못 박는다.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으며, 조만간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고 단언한다.

마르크스가 근 160년 전 예견한 대로, 기술진보로 인해 더 이상 노동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의 시대가 바야흐로 눈앞에 닥칠 것이라는 외침이다.

저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특이점이 온다>(2005년)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쯤 비(非)생물(인공지능)이 생물들이 지닌 지능의 총합을 뛰어넘는 시대가 오며, 2040년대에는 비생물 지능이 생물지능을 10억배 능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는 ‘기술의 특이점’이다.

저자는 주목한 것은 기술이 아닌 ‘경제의 특이점’이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기술의 특이점'이 오기 전,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기존의 경제 법칙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자리가 사라지면 개인소득이 줄어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경기 위축과 침체가 만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저술의 방점은 대책 마련에 찍혀 있다. 저자는 하나의 대책으로서 정부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그 밖에도 새로운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기계는 인간의 일을 맡고, 인간은 미래를 맡아야 한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책은 먼저 산업혁명의 역사, 과학 기술과 인공지능의 현주소, 인공지능 혁명에 따른 대변화를 훑어본 뒤 2021년, 2031년, 2041년 각 시점에 인류가 마주하게 될 경제·사회적 미래모습을 그려본다. 논리가 탄탄하며, 복잡할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서술한 필력도 돋보인다.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서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포춘지 편집장 제프 콜빈의 <인간은 과소평가 되었다>는 책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실제로 기계가 대체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같이 기뻐해 주는 공감 능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장례식장을 방문한 로봇에게 위안을 얻진 못할 것이다. 아울러 화가 난 고객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마음을 돌리는 것도 공감 능력을 갖춘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다른 분야는 몰라도 상호행위를 통한 공감(Empathy) 능력만큼은 도저히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인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를 보고 나니 ‘공감’ 능력마저 인간의 ‘최후의 몫’이라고 장담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