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무엇보다 약제 급여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한국 암치료 보장성확대 협력단(이하 암보협)’은 10일 대한종양내과학회 제10차 학술대회에서 ‘문재인 정부 보건의료정책(Moon Care), 방향과 해석’ 세션을 개최하고, 약제 급여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다.

▲ 출처=대한종양내과학회 제공

암보협은 암환자 치료에 대한 환자 접근성 이슈 공론화와 치료환경 개선, 보장성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 제언을 하기 위해 의료계(학계), 환자(단체), 언론 등 암 질환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모여 현안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된 모임이다. 임영혁 암보협 대표(대한종양내과학회 이사장)는 “새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가 발표됨에 따라, 향후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고 치료 보장성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그러나 아직까지 약제 급여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제도 개선안은 부재한 상황이다. 오랜 기간 소요되는 약제의 보험 등재 속도로 인해 환자들이 메디컬 푸어로 전락할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약제 급여등재 소요 기간 1~3년, 정부 2022년까지 고가 신약 신속등재 방안 마련 계획
약제 급여등재는 경제성평가와 약가협상을 통해 되는데,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과정만 1년~3년이 걸린다. 제약사들이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기존 약제보다 효과가 높다는 것을 주장하지만, 경제성평가 자료만으로는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해당 신약의 비급여 기간이 발생하면서 환자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급여가 가시화된 폐암 신약 ‘타그리소’도 비급여 투여 기간일 때 환자들은 월 700만원 씩 연간 700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높은 약가에 비해 치료효과의 정도가 분명하지 않아 급여가 어려웠던 의약품에 대해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급여화하는 선별급여 제도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위암에 급여 중인 항암제가 다른 암에는 경제성 미흡으로 급여가 어려웠던 경우, 사회적 요구도 등을 고려해 환자 본인부담률 30~90%으로 차등해 급여화하는 것이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12월까지 환자 전액 본인부담 약제 급여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상반기 중에는 선별급여 적용 시스템을 보완해 관련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또 2022년까지 경제성평가 면제제도와 위험분담제도를 연계해 고가 신약 신속등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 출처=서울아산병원 이대호 교수 제공

급여등재는 물론 美 승인 후 국내 약물 허가 기간도 길어
이날 자리에 참석한 서울아산병원 혈액종양학과 이대호 교수는 “그러나 현재 항암제의 건보재정 지원은 매우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전체 건보재정 약제비 중 항암제 투자 비율은 9%대로 OECD 국가(19%)에 비해 현저히 낮다”면서 “암환자와 사망률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부담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항암제에 대한 더 많은 건보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대호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 신약은 급여가 되지만, 미국 FDA에서 적응증 승인을 받은 항암제의 국내 허가도 1~6년 소요된다. 또 월 500만원 이상 약값을 부담해야 급여화가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많은 새로운 약들이 급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이대호 교수 사진=유수인 기자

이 교수는 “대부분 암환자는 비급여 항암신약으로 ‘메디컬푸어’로 전락한다. 평균 2년 소요되는(757일) 약제 평가협상 기간으로 인해 환자 혜택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그 기간동안 환자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된다”면서 “한정된 건보재정 안에서 약제 보장성 확보여부에 대한 의료진과 환자의 불안감은 지속된다. 2022년에 고가신약 등재방안이 마무리 된다면, 암환자 ‘메디컬푸어’ 문제는 현 정권에서 해결할 수 없다. 비급여 등재 방안, 경제성평가 면제위험분담제도 연계방안 등 약제 관련 세부안 마련과 시행이 보다 속도감 있게 적용돼야 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자단체도 이에 대해 강한 공감을 표했다.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백민환 회장,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대부분의 암환자들은 비급여 항암신약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메디컬푸어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있다. 약제 급여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지금보다 더 발생할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부 5년차인 2022년에 혁신신약 등재방안이 마련되면 암환자 메디컬푸어 문제를 현 정권에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약제 보장성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부, 약물 허가 동시에 급여 등재하는 ‘선등재·후평가’ 도입 등 제도 개선 필요성 공감
이에 이 교수는 내년 상반기 심평원이 선별급여 적용 시스템 보완할 때, ‘다양한 약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규 등재약제’의 접근성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약제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나, 위험분담제 도입으로 다양한 약가 보장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등재·후평가’ 방법도 있다. 식약처의 약물 허가와 동시에 약제를 등재한 후, 한시적으로 먼저 급여를 등재하고, 비용효과적으로 평가된 가격이 결정되면 그만큼의 차액을 제약사로부터 되돌려 받는 것.

이런 주장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병일 약제관리실장은 “국민 안전과 환자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제에 대해서는 허가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등재를 신청하도록 하는 선등재 후평가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공감했다.

▲ 곽명섭 과장 사진=유수인 기자

보건복지부 곽명섭 보험약제과장은 “먼저 정부는 기존 비급여였던 약제에 대한 등재 부분을 검토 후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다. 약제 급여의 경우 경제성평가와 협상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이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에 동의했다. 곽명섭 과장은 “약가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의 협상력이 중요하다. 협상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약제 급여 관련) 먼저 제도를 정비하고 그 후에 추진할 것이다. 또 급여 등재는 됐는데 횟수에 제한이 있는 약제, 경제성 평가에서 탈락됐던 약제에 대해서도 되짚어볼 것이다. 항암제와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중심으로 먼저 등재작업을 거칠 예정이며, 구체적인 계획은 올해 말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곽 과장은 “또 약제는 지속적으로 복용해야하는 특수성이 있다. 지원금액을 상향조정하는 것은 물론 지원 횟수에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재 국고 지원은 6.9조원이나 2022년까지 30.6조원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거 다국적 제약사에서 근무했던 A씨는 “정부가 급여를 안해주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약사가 얼만큼 제대로 준비를 해서 정부와 협상을 하느냐다”라면서 “한국에서 가격이 떨어지면 인근 다른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는 프리미엄 프라이스(할증가격)을 받고 싶을 것이다. 제약사에서 꼼꼼히 경제성평가를 하고 제대로 협상을 한다면 충분히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항암제 급여화도 중요하지만 어떤 항암제를 급여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급여가 된 항암제의 효과를 분석해서 제대로 된 데이터를 통해 급여가 필요한지, 유지해야 하는지, 퇴출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