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회사에 부정 이슈가 발생해 CEO 책임론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 변수도 있어서 대응 시나리오를 세우기가 쉽지 않은데요. 가장 힘든 게 CEO의 실제 생각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CEO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필자는 사실 이런 질문을 여러 기업에서 상당히 많이 받습니다. 흔히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사내에 사일로(Silo)를 없애야 제대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고 종종 조언합니다. 그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부서와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 단절만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사일로는 최고 의사결정자 또는 그 그룹과 실무그룹 간의 사일로입니다.

기존 같은 부서 간 사일로의 경우에는 부서장 또는 부서 실무자들 간의 친근감 등으로 어느 정도 자연 해소되거나, 최고 의사결정자의 강한 지시로 협업이 가능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 의사결정자와 실무자들 간의 사일로는 대체로 존재한다는 공감대까지도 이르지 못한 채 조직에 큰 피해를 입히게 되니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최고 의사결정자들은 인의 장막에 둘러쳐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 의사결정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내에서 소수의 핵심 임원들이 도맡아 하곤 합니다. 평소에는 상황이나 시간이나 여러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의 간접적 커뮤니케이션도 별 문제 없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면 사정은 완전하게 달라집니다.

실시간으로 상황이 변화하면서 추가적인 이해관계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적인 제약은 점점 더 거세집니다. 최고 의사결정자에게까지 책임론 같은 비난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사실 최고 의사결정자도 제대로 된 상황 인식이나 대응 전략을 구상하기 어려워질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최고 의사결정자와의 가교 역할을 담당했던 임원들은 위기 시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제대로 다가가거나,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한마디로 눈치만 보면서 향후 위기 대응 방향을 점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실무진들은 이 경우 완전한 패닉에 빠집니다. 변해가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무엇을 정해 지시가 내려와야 대응을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최고 의사결정자를 포함한 그 그룹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실무진의 경험에만 의지해 대응을 진행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기껏 실행을 한다고 했는데, 위에서 “누가 그렇게 대응하라고 했습니까?”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 최고 의사결정자 그룹에 보고합니다. 실무진들이 전문가들과 여러 상황 분석을 진행해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여러 개로 분석해서 시나리오 형식으로 보고하는 것이죠. 대응 방향의 초이스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상당수 기업에서는 “해당 시나리오들이 VIP 의중을 담지 못했다”는 피드백과 함께 사장되거나 개정을 지시받습니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의중이 지속적으로 오리무중인 가운데, 예상 시나리오는 그 복잡함과 다양함이 배가 됩니다. 이때부터는 그냥 보고를 위한 업무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그래서 최고 의사결정자의 가시성(Visibility)이 중요합니다. 흔히 이 가시성이라는 것을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보이는 가시성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시성이란 내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의 리더십이라는 의미와도 연결됩니다. 주어진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모두가 모여 앉았을 때 최고 의사결정자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버 커뮤니케이션하라”는 원칙도 이런 경우 유효합니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오버 커뮤니케이션해주어야 실무진들이 일사불란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로는 로우 프로파일하더라도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상호 간 오버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위기관리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완전하게 실무진들이 이해한다면 위기 대응에 있어 주저함이나 갈등은 사라집니다. 실무진이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 활동하게 됩니다. 전략을 세울 수 있고 시나리오를 정확하게 가를 수도 있습니다. 귄위적이거나 비밀주의적이고, 마치 정보기관 같이 조용한 조직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주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