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995년 6월 29일 열렸던 고(故)김광석의 생전 마지막 콘서트 동영상을 구해 봤다. 김광석은 공연 중간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상식화되는 일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오늘 또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900명 정도 깔려 있다고… 황당한 일이 많이 일어나서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습니다. 많이 안 다쳤으면 좋겠구요….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란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에 들은 이 노랫말 중 ‘포수에게 잡혀온 붕어만이 한숨을 내쉰다…’가 귀에 꽂힌다. 1995년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포수에게 잡혀 왔던 붕어처럼 우리는 1년 전 황망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녹조로 인해 낙동강 생태계가 파괴되는데 제대로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대선에 동원돼 댓글을 달고 여론 조작을 해도 큰 벌을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회였다. 대통령 후보가 주가조작에 연관됐어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열지 않고 그럴 리 없다고 믿었던 사회였다. 국고에서 수조원이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사라져버려도 시간을 두고 기다려 봐야 한다는 언론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였다. 304명(미수습자포함)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도 석연치 않은 의문만 남긴채 흐지부지 넘어가는 사회였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위선이 융통성이라고 인정받던 사회였다. 포수에게 잡혀 온 붕어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이제 이런 문제를 고치자 하니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정권이 교체하듯 보복도 잇따를 수 있으니 자중하라는 의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듯이 권력을 잡은 자의 범법은 눈감아 줘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다 또 포수에게 잡힌 붕어가 되는 건 아닌지.

요즘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문구가 까뮈보다, 소설 <이방인>보다 더 유명해졌다. 왜 이런 50여년 전 외국 작가가 만들어낸 말이 우리 귓가에 맴도는지. 읊조리지만 말고 생각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달라져야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상식처럼 되는 사회라면 상식을 바로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처럼 의지는 넘치는데 반성이 없는 것은 아쉽다. 전임 대통령이 구속 연장됐고 국내 제1기업의 총수가 영어의 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 지난 세월 포수가 붕어를 포획하도록 바닷길을 열고 방조한 이들은 숨죽이고 있다. 과유불급이라 칭할 정도로 지난 정부를 찬양했던 언론들은 지금 어떤 반성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앞세우고 공명정대한 언론을 자부하고 있다. 골목상권을 망가뜨린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불평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최고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권력에 아첨했지만 자의는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포수에게 잡혔던 붕어들은 지천인데 잡히게 된 과정을 명쾌하게 파헤치고 인지하는 붕어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간다면 붕어를 사냥하는 비상식의 포수가 등장하는 사회를 또 마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적어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쉽게 설득당하지 말아야 한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미 포수에게 잡혀봤던 붕어들이라면 당연지사 가야 할 길 아니겠는가.

얼마 전 고위 공무원과 식사 자리에서 마주했다. 그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공무원들마저 한꺼번에 바뀔 수는 없다. 정부의 혈관과 같은 실무자들을 어떻게 다 바꾸나. 장차관급만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곱씹어보면 “옛 정부의 수족이었던 사람 모두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행정마비가 올 수 있다. 절대적이고 강력한 개혁이라는 것은 바람일 뿐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뀐다는 희망은 버리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 붕어들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비록 포수의 말을 믿기도 하고 포획당하기도 했지만 이제 정신 좀 차리자. 상식을 되찾아야 한다. 20년 후에 또 비상식이 상식을 압도하는 세상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6년 10월 29일 청계천 광장. 박근혜 퇴진을 요구한 첫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게 나라냐”라는 첫 구호가 터져 나왔다. 김광석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던 22년 전이나 1년 전에도 우리는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상식으로 둔갑하는 사회에 분노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적폐 청산’이 시대 과제로 떠올랐다. 뉘앙스가 너무 강하다는 소심한 비판도 있다. 정치보복을 중단하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정의는 힘 있는 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것이어야 한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스라는 자동차 부품 공장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제 소유주라는 증거는 있지만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 기업이다. 소유주가 불분명한 이 회사의 돈으로 코스닥의 한 업체는 많은 투자자들에게 주가조작 등을 통해 피해를 입혔다. 만약 다스가 이 전 대통령의 소유라면 그에 대한 처벌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이번만은 달랐으면 한다. 무엇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한 시기다. 또 어영부영하다 찾지 못한다면 적당히 비상식만 외치다 포수에게 잡혀와 한숨만 내쉬는 붕어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