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일본 제조업계의 혁신활동 발표대회에 특이한 변화가 있었다. 현장 혁신활동 사례의 발표자로 나서는 현장관리자들이 30대 중반의 젊은 관리자로 바뀐 것이다. 전통적으로 ‘모노쯔쿠리(물건 만들기)’라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경험과 노하우로 무장한 40~50대 현장관리자들이 전면에 나서던 10여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사례 발표에 나선 젊은 관리자들은 한결같이 ‘선배의 뒷모습에서 배운다’는 말을 강조한다. 현장에 남아 있는 50~60대 선배들이 혁신활동을 전개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고 어떻게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 갔는지. 선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의 뒷모습에서 얻어지는 배움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혁신활동 사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초고령화 사회라고 불리는 일본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가 산업현장에서 물러나는 시점을 예측하며 20년 가까이 준비해왔다. 공정의 자동화와 작업 표준화, 암묵지의 형식지화 등 기술 상실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 왔다. ‘단카이세대’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태어나 철저한 직업정신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70년대 이후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제조강국 일본의 주인공들이다. 자원과 환경에서 열세인 제조강국 일본의 기반은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이 떠난 제조현장은 제조강국 일본의 입지를 흔드는 일이기 때문에 기술 전승을 위한 일본 기업들의 준비와 노력은 집요했다. 하지만, 단카이세대가 본격적으로 제조현장에서 물러나고 있는 지금 일본 제조업이 당면한 문제는 단순한 기술 전승의 문제가 아니다. 단카이세대의 퇴직은 단순히 손끝기술과 노하우의 단절이 아니라 총체적인 ‘현장력의 상실’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제조현장 또한 급속히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제조현장에 있어서 고령화는 단기적으로는 고임금인력 구조와 원가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 또한, 중기적으로는 숙련된 기술인력의 상실로 인한 총체적인 제조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고임금인력구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신규인력의 충원, 아웃소싱 등 인력최적화를 위한 노력과 정년연장 등 숙련된 인력의 유지를 위한 경영정책의 모순이 불가피하다.

최근 한 대기업의 CEO가 현장 고령화에 따른 걱정을 상의해 왔다. 당장 현장 고령화에 의한 고임금 구조로 경영의 부담도 크지만, 조만간 다가오는 숙련인력들의 퇴직을 생각하면 걱정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 기업은 신규인력을 꾸준히 채용하지만 조기 퇴직률이 높다. 현장은 연령의 양극화로 베테랑과 신규인력 간의 기술격차가 크고 세대차이로 인한 조직 화합의 부정적 영향도 있다. 정밀소재를 다루는 특수공정 한 곳은 이미 20년 된 베테랑 한 사람 외에는 믿을 수 있는 기술인력이 없는 상태인데 신규직원들은 이를 기피하고 있다. 생산성 유지를 위해 공정의 자동화와 인력의 다기능화를 추진하고 있고, 핵심공정에는 제한적이지만 숙련자와 신규인력을 2인 1조로 배치해 도제식 기술 전승을 모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현장의 개선활동을 기본부터 다시 재정립하는 통합현장혁신활동(Integrated Field Innovation)을 소개했다. 통합현장혁신 활동은 일체의 형식을 배제하고 관리를 최소화하며,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고 자발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개선의 성과보다 현장 작업자를 우선으로 하는 혁신활동 프로그램으로 현장직원들로부터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한 혁신활동’이라는 평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통합현장혁신과 같은 현장의 개선활동은 단순한 성과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선은 문제를 찾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를 찾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 한다. 특히 현장의 문제는 어느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설비와 공정, 제품은 물론 작업의 내용과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상당한 수준의 종합적인 지식과 역량이 필요하다. 문제를 찾는 과정 자체가 신규인력들의 역량을 조기에 강화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또한 베테랑과 신입직원이 함께 문제를 찾아내고 대책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기술과 노하우의 전승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선후배 간의 화합과 소통의 기반이 생기고 조직력이 형성된다. 특히 선후배가 함께 땀 흘린 개선의 성과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단순한 보람이 아니라 선배들의 바람직한 직업관이 감동으로 전달되는 기회가 된다.

고임금 인력구조는 분명히 경쟁력 상실의 주요인이고 기업경영의 부담이다. 하지만 고령인력의 숙련된 경험과 노하우, 기술과 지혜는 단기간에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한번 잃으면 되찾기 어려운 소중한 기업자산이다. 우리 제조현장에는 아직 뒷모습으로 가르칠 선배들이 많다. 기술 전승의 주체인 숙련된 선배들이, 바람직한 인생관 직업관으로 무장한 좋은 선배들이 남아 있다. 5년 뒤, 젊은 현장관리자들의 미숙함과 현장력의 상실을 걱정하지 않기 위한 기술 전승과 역량강화의 답은 지금 우리 현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