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품질이 낮은 원유를 공급해 미국과 중국, 인디아 등 수입국 정유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으로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제재로 석유산업이 자본조달을 통한 재투자를 못하는 등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풀이된다.

원유에 포함된 수분이나 염분이 많은 질낮은 원유가 공급되자 글로벌 정유사들은 계약을 취소하거나 할인가에 물량을 인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팔아 손에 쥐는 현금은 점점 더 줄어들면서 국가재정의 90% 이상을 원유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점점 더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씨티은행이 생산차질로 국제 원유시장에 영향을 줄 ‘취약한 5개 석유국가’ 중 하나로 지목된 나라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의 내부 문건과 수십명의 경영진, 노동자, 원유투자자들과 한 인터뷰를 인용해 PDVSA가 최근 저품질 원유를 공급해 미국과 중국,인도 정유사들의 불만과 주문취소, 가격할인 요구 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유사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공급받은 원유에 물과 소금, 정유공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금속이 과다한 수준 함유돼 있다는 것이다.

통신은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품질 문제는 원유를 적절하게 처리, 저장하는 데 필요한 화공약품과 장비 부족 탓이라면서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생산시설 가동중단과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적기 납품을 위한 과속 운송도 품질 저하에 한 몫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유회사 필립스66은 상반기 중 품질 저하를 이유로 최소 8카고를 취소했다. 이는 약 440만배럴로 시가로 따져 약 2억달러어치다.

세계 최대 정유공장 운용사인 인도의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스도 품질 문제로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 국영석유회사(CNPC)도 올해 초 원유 내 수분과다를 이유로 이의를 제기했다고 전직 PDVSA 직원이 털어놨다고 통신은 전했다.

PDVSA 원유의 품질저하는 생산인프라 관리 부실을 나타내는 가장 최신의 징후로 국가부채 지급을 위해 현금을 쌓느라 한 푼이라도 아쉬운 시기에 베네수엘라에 심각한 현금위기를 가속화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베네수엘라는 앞으로 몇 주 사이에 약 34억달러의 국채를 갚아야 한다. PDVSA의 재정난은 국가 재정수입의 90% 이상을 석유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품질 저하가 시작된 것은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근들어 품질저하가 가속화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PDVSA는 화공약품 주입지점, 펌프, 저장시설을 수리하고 있지만 화공약품 부족으로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베네수엘라의 원유생산은 유전 내 범죄, 투자부진, PDVSA의 경영부실 , 4년 연속 경제 위축 등이 어우러져 30년 사이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무엇보다 PDVSA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가한 강력한 금융제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다수 은행들이 원유수출과 구매 등에 필요한 신용장 연장을 얻어내지 못하는 탓에 결국 거래중단과 분쟁을 겪고 있다.

게다가 원유 생산 시설 정비공들이 달아난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PDVSA의 다수 정비 인력들은 식량부족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시위대와 사회주의 정부간 충돌 속에 베네수엘라를 떠나버렸다.

베네수엘라는 유황 성분이 많은 중질유를 미국과 중국, 인도와 유럽에 수출해왔지만 전 세계 시장에 원유가 넘치는 탓에 품질이 낮은 베네수 엘라산 원유를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욱이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러시아에 빌린 500억달러 이상의 차관을 갚기 위해 생산량의약 40%를 두 나라에 인도하는 탓에 원유를 팔아 현금을 챙길 여지는 줄고 있다는 것도 베네수엘라를 괴롭히는 골칫거리다.

현금을 내고 사가는 최대 고객사들인 릴라이언스와 필립스66도 베네수엘라를 압박하고 있다. 필립스66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벨트 시설에서 생산된 소금성분이 많은 원유가를 할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소금성분이 높으면 정유탑과 다른 정유시설의 부식을 초래하기 때문에 인수를 거절하거나 할인가에 인수하는 게 보통이다.

릴라이언스는 원유내 수분과 과다 침전물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원유의 수분과 침전물 함량은 2%미만이어야 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에 인수한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함유량이 5%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경제제재로 자본조달이 되지 않고 신규 투자감소는 물론 화공약품 투입을 통한 적기 정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원유 품질 저하가 급가속하면서 이것이 다시 수출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있다고 보는 게 온당할 것 같다. 문제는 베네수엘라고 고유황 원유를 미국 등에 수출하고 미국 정유사들이 정유해 이를 국제 시장에 팔아왔는데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는다면 연쇄 파급효과를 낳아 가격상승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씨티은행이 ‘취약한 5개 석유국가’에 베네수엘라를 넣은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