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 전원 사퇴 후 처음 열린 19일 재판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불출석했다. 지난 16일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던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변호하던 변호인단의 전원 사퇴를 시작으로 향후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의 방법으로 법원에 대한 ‘법정 외 투쟁’을 이어갈 뜻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박 전 대통령의 ‘결단’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다.

우선 이 사건은 변호사 선임이 반드시 필요한 ‘필요적 변호사건’이다. 그런 만큼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을 위하여 국선변호인부터 선정해주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은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인 때, 70세 이상인 때,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사건으로 기소된 때’ 등의 사건에 대하여는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중형 선고가 예상되거나 피고인 스스로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법적 배려로, 피고인 자신이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거나 법원이 이를 대신할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한 재판진행은 불가능하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구속 상태이고, 혐의를 받고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죄 법정형은 10년 이상이기 때문에 변호인단이 전원 사퇴한 현 상황에서 재판부는 다른 절차를 제쳐두고 국선변호사 선정부터 서둘러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일괄 사퇴한 이후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공판 진행을 위해 더 이상 국선 변호인단 선정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선정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국선변호인이 선임된다면 국선변호인은 담당 재판부에 배속된 ‘국선전담변호사’가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선변호사 중에는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며 자신이 수임한 사건 이외 법원이 선정해 주는 국선변호 사건을 간헐적으로 수행하는 변호사도 있지만, 방대한 기록 분량이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대법원의 위촉을 받아 국가로부터 보수를 받으며 오로지 국선변호 사건만을 수행하는 전담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으로 낙점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경우에도 박 전 대통령이 국선변호인의 접견을 거부한다면 결국 재판절차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호사 접견권은 피고인의 권리일 뿐 의무사항은 아니므로 피고인이 변호사 접견을 거부하는 한 이를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경우 법원은 대안으로 피고인 신분으로 구속되어 있는 박 전 대통령을 강제 구인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변호인을 통해 재판에 임하는 피고인의 의중을 알 수 없다면 피고인을 법정에 강제로 끌어내어 재판부가 직접 심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속은 구인과 구금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상 법원은 별도의 절차 없이도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구인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법원 앞에서 매일같이 집회를 열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법원이 물리력을 행사하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을 강제 구인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러한 배경 하에 최근 언론을 통해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 ‘궐석재판’이다. 형사소송절차 상 당사자는 법원, 검찰, 피고인으로 이 중 하나라도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277조의 2에서는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재판절차 진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언급하고 있는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인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아직 실무적으로는 논의된 바가 없다.

구속된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거부하는 것은 생살여탈권을 쥔 법원에 ‘감히’ 대적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피고인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 중 하나로 유사사례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란 법원이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며, 출석거부의 의사표시만을 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또한 출석거부의 의사는 외부적 행동에 의하여 표출되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출석거부의 목적으로 유치장의 쇠창살 등을 잡고 항거하는 경우, 큰소리로 폭언을 하면서 저항하는 경우, 단식투쟁의 결과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쇠약해진 경우 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법정 출석을 거부하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출석 없이도 재판을 할 수 있는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법원이 별도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또한 절차적으로는 교도소장이 이와 같은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즉시 법원에 통지할 것, 법원은 실제로 그와 같은 사유가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조사할 것, 이 같은 조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교도관리 기타 관계자의 출석을 명하여 진술을 듣거나 그들로 하여금 보고서를 제출하게 할 것, 재판부를 이루는 법관으로 하여금 이를 조사하게 할 것 등 형사소송규칙이 정한 수순을 밟아야 한다.

만약 이 같은 절차를 무시하거나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고 무턱대고 궐석재판을 할 경우에는 그러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이 항소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대법원 2001. 6. 12. 선고 2001도114 판결 참조). 결국 법원이 궐석재판을 염두에 두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궐석재판을 받아도 될 것인지에 대한 조사와 판단을 위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법원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외 투쟁’으로 인하여 소송절차가 지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국선변호인을 선정해도 박 전 대통령이 지금처럼 법원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변호인의 접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고, 궐석재판을 하기도, 그렇다고 강제구인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로 연장한 구속영장의 기간도 만료를 앞두게 될 것이다.

법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변론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박 전 대통령 측은 법정 외 투쟁에 승부수를 걸었다. 이러한 승부수가 어떠한 결론으로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