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전자를 대상으로 세탁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가전업체 월풀이 세이프가드 조치로 두 회사 세탁기에 50%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에 요청한 사실이 18일 확인됐다.

월풀은 19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공청회를 앞두고 공세의 수위를 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재 ITC는 지난 5일 세이프가드 발동 조건인 산업피해에 '긍정' 판단을 내린 후 막판 수위 조절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권고할 구체적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검토하는 가운에 월풀이 50%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며 판을 키우는 모습이다.

50%보다 낮은 관세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덤핑을 막지 못한다는 게 월풀의 주장이다. 나아가 우회덤핑을 막기 위해 세탁기 부품에도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부품 수입에 할당량을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한국 정부는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ITC가 세이프가드 카드를 만지작거린 지난 5일부터 최근까지 삼성과 LG가 미국 현지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비롯해 미국 업체가 생산하지 않은 세탁기는 세이프가드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차선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품에 세이프가드를 적용하지 않도록 만드는 역제안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월풀이 50% 관세를 주장하며 세탁기 부품에도 동일한 관세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현지에 구축하는 생산거점은 일종의 조립라인이다. 부품을 생산하는 곳은 여전히 베트남 등이다. 이런 상태에서 부품에도 세이프가드가 적용되면 거점 운영 자체를 제대로 가동할 수 없고, 결국 미국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월풀은 오히려 부품에도 강력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현지에 부품까지 생산하는 공장을 짓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국인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다.

월풀의 주장이 현실화한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지 생산거점을 완제품이 아닌, 부품까지 아우르게 되며 당연히 완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현지거점의 존재이유도 사라진다. 적극적인 대응이 아닌, 세이프가드 발동을 염두에 두고 미온적인 차선책을 고려하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이 마저도 무력화시키는 극한공세를 펴는 셈이다.

일단 외교통상자원부와 외교부, 삼성전자와 LG전자 관계자들은 19일 공청회에 참석해 월풀의 주장을 반박하는 한편 세이프가드가 현실이 될 경우 미국 산업계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 조작국 지정을 면했지만 미국의 통상압력은 여전하기 때문에, 일단 급한 불을 끈다는 심정으로 공청회에 임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대책회의에서 마련한 소극적 대응도 월풀의 공세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