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현실이 되면서 미국 측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자동차ㆍ철강 산업 관련 협상이 주목되고 있다. 두 산업 모두 미국의 누적적자가 심한 분야다. 미국 정부는 올해 들어 무역 적자 원인 조사와 안보영향 조사를 벌이며 자동차ㆍ철강 분야에 대한 ‘공격적 대응’을 예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정부 의견서를 미국 상무부에 보내고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도 설명회를 갖는 등 피해 방지책에 애썼지만 ‘올 것이 왔다’는 것이 자동차ㆍ철강업계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국 현지 고용창출 등  미국 내 좋은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집중홍보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한미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자동차와 철강분야가 타격을 받을 것임은 오래 전 예견된 일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미 FTA 재협상이 이루어질 경우 향후 5년 간 자동차와 철강 분야 수출 손실액이 170억달러(약 19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연평균 무역적자 증가액이 2억달러 이상인 산업들이다.

미국 정부가 ‘중간 단계 관세 양허 수준’으로 대응할 경우 5년간 수출 손실이 66억 달러로 추정됐다. 미국 정부가 재협상 이후 ‘양허 정지’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면 자동차 산업은 133억달러, 철강 산업은 12억 달러의 수출 손실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 2007년 7월 당시 한미 FTA 협정문 서명을 발표하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USTR 대표(출처=외교부)

트럼프 행정부 파상 공세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미 FTA ‘폐지 가능성’을 내걸고 한국에 대해 파상적인 공세를 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부터 한미 FTA가 ‘일자리를 없애는 협정’(job killing deal)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지난 3월에는 대통령 명의로 무역 적자 원인분석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청을 대상으로 ‘대통령 메모’(presidential memorandum : 연방 관보에 게재되지 않는 대통령 지시 사항)를 하달하고 반덤핑/상계관세 관련 단속 강화를 지시했다. 반덤핑과 상계관세는 자국의 산업 환경이 싼 가격의 수입품으로 악화될 경우 적정 수준(보통 덤핑 가격과 자국 평균 가격의 차이 안에서 관세를 부과)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복 조치를 뜻한다. 특히 철강 산업의 경우에는 미국 내에서 사실상 방위산업으로 분류돼 지난 4월 국가 안보 위해 여부 조사 명령도 발표됐다.

▲ 트럼프 미 대통령(출처=business Korea)

한국은 미국이 277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내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에 가장 큰 무역손실을 끼치는 국가는 중국으로 무역적자는 3470억달러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비관세장벽이나 덤핑 ▲미국 업체를 차별하는 관행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무역 관행 ▲FTA 등이 무역적자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실상 FTA가 미국 무역 적자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철강 수입의 경우에는 1962년 발효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지난 4월 국가 안보 위해 영향 조사가 이뤄졌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특정 수입품이 국가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상무부 산업보호국 조사를 거쳐 270일 안에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 철강 산업의 역량, 철강 산업이 기타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수입산 철강의 미국산 철강 대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가장 염려하는 이슈는 중국산 철강의 우회 수입이 초래하는 무역 적자였다. 최근 미 상무부는 중국산 철강 품목에 대해 기업 비밀 탈취 여부, 원산지 허위 표기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이외에도 미 관세청은 세수 확보를 위해 한미 FTA 품목 관련 400여 건의 조사를 벌였다. 주로 자동차와 섬유, 부품 산업에 집중됐다. 미 관세청 조사는 수출입 업자에게 직접 미 정부가 통보하는 행정 절차이기 때문에 한국 관세청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한국 무역계 "FTA  미국 무역 적자 초래 안해"

국내 반응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한경연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한국 대미 자동차 수출은 한미 FTA 발효 이후 연평균 12.4% 증가해 왔다”고 하면서도 “현지 생산 확대로 2016년부터 오히려 자동차 수출이 감소하고 있고, 자동차 부문 관세 양허는 2016년부터 시작된 사항이라 그 이전에는 FTA와 무관했다고 봐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또 한경원은 “미국이 한국에 승용차를 수출하는 물량은 FTA 기간 동안 연평균 37.4%씩 증가했고, 한국 수입차 중 미국차 점유율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산업부도 “최근 미국 무역 적자는 미시적ㆍ거시 측면이 복합으로 작용한 결과로 한미 FTA는 미국 무역 적자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수출증가가 큰 자동차나 ICT 분야는 FTA 이전부터 무관세가 적용됐거나 관세변화가 거의 없던 품목으로 대미 투자에 따른 투자연계형 수출이 미국 무역 적자의 미시적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산업부는 “미국 경제가 확장되면서 전체 경제의 수요가 증가한 것도 무역 적자의 거시적 원인일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최남석 교수의 '한미 FTA 재협상 시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 연구(출처=한국경제연구원)

자동차ㆍ철강업계 비상.. ‘무엇을 주고 받을 것인가’

자동차업계와 철강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한국 자동차 업계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해 2010년 51만 952대, 2011년 58만 8181대에서 2015년에는 106만 6164대까지 뛰어 올랐다.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자동차 대수는 2012년 317만 대를 찍은 이후 2015년 297만대 수준으로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 수출하는 완성차 ㆍ자동차 부품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부 교수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실증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에서 한미 FTA 전면 재협상에 따른 손실은 2021년까지 최대 133억 달러, 일자리 손실은 11만9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15년 기준으로 220억 달러다. 전체 대미 상품 무역수지 흑자가 258억 달러 수준임을 고려해 볼 때 86%나 되는 중요한 시장이 미국이다.

철강산업에서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 정지’가 이뤄 지면 2021년까지 무역 손실은 12억 달러, 일자리 손실은 6600명으로 추정됐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국부 유출과 일자리 감소의 주된 원인이 철강, 기계 분야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철강 기업의 타격도 피할 수 없다.

최남석 전북대 교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국 현지 고용창출, 평균임금이 높은 점을 지적하고 미국 내 좋은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계속 홍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전기차, 자율주행 차 등 한국의 신산업 개발과 미국의 신산업 정책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방향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면서 “자동차 부문 재협상의 경우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에 따른 세제 감면, 규제 완화 혜택을 미국 제조업체 U턴 케이스와 동일하게 보장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김윤형 한국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은 경제통상 관계에서 매우 ‘거래적(transactional)’인 관점을 취한다”면서 “결국 무엇을 주고 받을 것인가를 두고 끝까지 격론을 벌이는 지루한 협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