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CJ E&M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배우들이 있지만 ‘글로벌 스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배우들은 많지 않다. 배우 이병헌은 그 몇 없는 글로벌 스타들 중 한 명이다. <지.아이.조 2>, <레드2>, <매그니피센트 7>,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헐리우드 영화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세계 영화인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그런 정도라면 조금은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이병헌은 영화계에서 겸손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겸손한 배우 이병헌이 영화 <남한산성>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심지어 “이번 영화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영화”라면서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좋은 영화이기에.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후 약 5년 만에 출연한 역사 드라마 <남한한성>으로 관객들을 다시 찾아온 배우 이병헌을 지난달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가 극찬한 이번 영화, 그리고 그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남한산성>의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배역에 관계없이 출연을 결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남한산성>의 시나리오에서는 아주 강렬하게 느껴지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 속 가장 비극적인 순간,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소재에 대한 접근이라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그를 받아들이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에 ‘마음이 동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극중 어떤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이 영화에는 무조건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동혁 감독님은 처음 시나리오를 전해 주실 때 배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극 중에서 청나라와 화친을 제의했던 이조판서 ‘최명길’ 역할을 맡는 것은 출연을 결정한 다음에 정해졌고요.  

이 작품은 김훈 작가님의 동명 소설 <남한산성>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영화 촬영에 임하시기 전에 혹시 작품을 읽어 보셨나요? 읽어보셨다면 연기에 도움이 되셨나요?

원작이나 모티브가 있는 작품들의 영화에 출연할 때에는 되도록 연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스토리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성격 정도를 참고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그렇게 참고만 할 요량으로 황동혁 감독님에게 “원작을 읽는 것이 좋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제 판단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원작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 구해다 달라고 주변에 말했더니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김훈 작가께서 친필사인을 한 책을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행히도 시나리오에서 표현된 분위기나 캐릭터 성격과 크게 벗어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역사적인 내막을 이해하는데는 작품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영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한 이조판서 최명길을 연기한 배우 이병헌. 출처= CJ E&M

영화에서 상대 배우 김윤석씨(예조판서 김상헌)와 청나라와의 화친 문제를 두고 매우 격렬하게 갑론을박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요. 

말씀하신 장면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이전까지 화기애애했던 촬영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그 날만큼은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아마 배우들이 상황에 잘 몰입할 수 있도록 한 스탭들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연기에 가장 애를 쓴 부분은 시나리오에서 나타난 최명길의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임금(인조)을 설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감정을 억누르면서 격렬하게 드러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었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여기에 상대 배우인 김윤석 씨는 김상헌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몰입해 눈빛이 확 달라지는 것을 보니 더 열심히(?)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상대 배우인 김윤석씨도 그렇지만, 인조 역의 박해일씨부터 박희순·고수· 조우진 등 조연 배우들도 연기의 달인들이 모여 <남한산성>은 출연진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연기 호흡은 어떠셨는지요?

김윤석씨를 비롯한 모든 주연, 조연 배우들은 모두 이번 작품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한 분 한 분의 연기 실력은 잘 알고 있었고요.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솔직히 걱정이 좀 됐습니다. 다들 자기 색깔이 뚜렷한 베테랑 연기자들이라 영화에서 서로 잘 어우러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죠, 그러나 역시 베테랑들은 달랐습니다. 연기가 시작되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호흡이 맞아 들어가면서 ‘케미(조합)’가 나오는 것을 보니 ‘역시 프로들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사회 때 영화를 보니 너무나 강렬한 개인의 색채들이 모여 이루는 새로운 조화들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 출처= CJ E&M

이번 작품에서 본인의 연기에 대해서는 만족을 하셨나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자기 연기가 100%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없죠. 늘 아쉬움이 남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애써서 자기 노력이나 성과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겸손하고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도 시나리오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최명길의 모습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정도로 연기한 것 같습니다.    

가정을 이루신 뒤로 '안정감'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가정을 이루기 전과 달라진 점을 실감하시는지요.

생활에서 예전과 많이 달라졌죠. 저를 믿고 따르는 가족이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만 하고요. 그런데 연기 쪽으로는 사실 걱정되는 부분이 좀 있어요. 예전에 어떤 배우 선배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안정감이 생긴 것은 좋은데 배우로서 예민한 감수성들이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솔직히 잘 공감을 못했는데요. 결혼을 하고 나니 그 선배의 말이 점점 공감되더라고요. 결혼하기 전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감수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아요.       

배우 설경구씨는 “연기자란 평생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 연기하시면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물론 연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 개인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웃음). 다만, 배우들은 연기자라는 직업으로 일을 하는 동안 모든 순간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 것 같아요. 깨어 있든, 잠을 자든, 밥을 먹든, 심지어 꿈 속 에서도 말이죠. 그러한 고민의 과정이 없으면 캐릭터에 젖어들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요. 고민하고 캐릭터에 몰입하지 않으면 연기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기자들에게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하다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우들이 있죠. 오래 연기를 하다 보면요. 

좌우명이 특이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엔 열 살짜리 소년이 있다'는 게 제 좌우명입니다. 배우로서 어린아이와 같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능하면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이병헌 씨는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됐으면 하시나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요. 사람들이 저의 다음 모습을 궁금해했으면 좋겠어요. 음...한 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배우...라거나 아니면, ‘답이 없는’ 배우도 좋겠네요(웃음)  

끝으로 관객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요.

<남한산성>은 화려한 출연진을 떠나서, 연기를 떠나서 참 ‘좋은 영화’입니다. 많은 관객 여러분들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남한산성>, 흥행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