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간 국내에서 쌀이 계속 남아돌 것으로 보인다. 1인당 쌀 소비량이 계속 줄지만 농가들의 생산 조절은 좀처럼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로 농경지 면적은 감소했지만 ‘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단순히 쌀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미래 대응이 어렵고 쌀 가공 식품 활성화를 통해 변화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는 쌀을 시장에서 격리하기 위한 물량 37만톤과 공공비축미 35만톤을 매입해 쌀 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 기능성 쌀 중 하나인 찰현미(출처=농림축산식품부)

10년간 쌀 초과공급 시대 열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6일 “지난해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61.9kg으로 전년보다 1킬로그램 감소했고 1980년 1인당 쌀 소비량의 46.8%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10년 간 연 24만 톤의 쌀이 초과 공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쌀값이 추락하면 농가의 기반이 흔들린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2000년대 말부터 논ㆍ밭 고정직불제를 시행해 왔다. 또 농식품부는 올해 쌀 한 가마당 기준 가격을 15만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농업계는 “한 가마 당 15만원은 터무니 없이 낮다. 정부 양곡 매입을 100만 톤으로 늘리고 공공 비축미 계약재배 등으로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쌀 목표 가격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단위 면적 당 보조금을 농민에게 주는 제도다.

정부와 농업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정책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가장 직접적인 대책은 쌀 고급화 전략으로 중국 등 양질의 외국산 쌀을 원하는 지역에 수출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심각한 농지 오염으로 ‘카드뮴 쌀’ 논쟁이 대두되면서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우량 쌀을 수입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우량 쌀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중국을 핵심 타깃으로 설정했다.

벼 매입 자금을 왜 정부가 지원할까

정부와 농협은 총 3.3조원의 벼 매입 자금을 융자 지원하기로 했다. 이 규모는 지난해보다 3000억 원이 늘어난 것이다.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은 농민들이 희망하는 물량을 전액 소화하기로 했다. 사료용 쌀은 내년 공급 물량이 75만 톤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주식용 쌀의 경우 공적 개발 원조 등을 통해 해외에 유통시키는 것도 중요한 정책으로 손꼽히고 있다.

공공비축미는 매입 시 벼 재배면적 감소분을 반영, 평가한다. 그리고 다수확 품종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우수 형질의 벼 품종만 남기는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가을에 지급되는 우선지급금은 8월 쌀값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그러나 정부는 우선지급금이 오히려 가을 쌀 값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농업계 의견을 수렴해 정책자금을 집행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쌀 과다 생산이 향후 10년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정부 정책이 시장을 교란시켜서는 안 된다는 중론(衆論)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 한산한 낙원상가 떡집거리(출처=여행이 좋다)

떡 시장 불황.. 쌀 가공식품화도 ‘백약이 무효’

농식품부는 최근 10여년 간 ‘쌀 가공식품 산업화’ 정책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쌀을 가공해 떡이나 장, 국수 등으로 만들어 상품화한다는 전략이다. 또 이들 상품은 6차산업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여력이 있는 농민들에게는 인기 있는 품목들이다.

그러나 떡의 경우 지난 해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김광남 경상남도 6차산업지원센터 위원은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낙원상가 골목 하나가 떡집 거리였는데, 지금은 두 세 개도 제대로 운영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김 위원은 “장류나 떡류가 만들기 쉽다는 것 때문에 농민들이 섣불리 진출하는데, 현실적으로 인기를 끌기 어려운 품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떡의 경우 매출의 계절성이 심해 명절 시즌에 수요가 집중된다. 평상시에는 ‘살찌는 음식’으로 분류돼 떡 수요가 부진하다. 송학식품, CJ 제일제당, 풀무원 등이 떡 브랜드 시장을 장악한 기업들이지만 매년 시장점유율이 평균 1.5~2% 가량 줄고 있다.

김재훈 식탁이 있는 삶 대표는 “쌀 값이 오르면 떡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통념인데, 지금은 쌀값도 떨어지고 떡 수요도 줄어드는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쌀 가공식품화가 쌀 생산량 과다의 해법인 것처럼 여겨졌는데 백약이 무효라 걱정”이라고 털어 놨다.

대안 마련한다고 우후죽순 특정 작물 옮겨가는 농가들도 문제

“벼농사 짓는 농가들 중 일부만 다른 작물로 옮겨 가도 그 작물의 경기가 휘청휘청한다.” 전북 익산시에서 포도재배를 하고 있는 김 모씨의 말이다. 전북 익산 지역은 금강과 만경강이 둘러싼 호남평야의 시작점이다. 지난 5년 전부터 이 지역 농민들은 벼농사와 밭농사를 겸해 왔다. ‘쌀 농사는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하고, 돈을 벌려면 특용작물 등 밭농사를 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 지역 농민들의 지배적인 평가였다.

문제는 상당수 농민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작목을 바꾸는 것이다. 농식품 유통 전문가인 김양환 얌테이블 이사는 “양손에 떡을 쥐는 식으로 벼농사와 특용작물 농사를 겸하다가 동반 폭락하는 위기를 맞는 경우가 꽤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이사는 최근 벼농사 대농(大農) 들이 작목을 겸하던 아로니아, 블루베리 열풍에 대해 분석하며 “결국 작목 자체의 공급 과다만 문제라기보다, 쌀 생산 과다 상황에서 농가들이 이중으로 인기 작물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