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네이버 영화

남한산성 사건, 정확하게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치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은 어쩌면 목숨을 좌지우지 했을 정도로 심한 상처의 환부를 애써서 다시 열고 헤집는 ‘잔인한 일’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남한산성>은 한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었던 47일 동안 청나라에 항전(抗戰)한 우리 선조들의 기록에서 진짜 ‘인간의 고뇌’를 발견한다.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남한산성>의 언론 시사회는 이런 고뇌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이 영화는 소설 <칼의 노래>로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그려낸 작가  김훈이 집필한 동명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자기 신념에 따른 방법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한 두 신하 최명길(이병헌 분), 김상헌(김윤석 분)과 나라의 모든 것을 잃을 위기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왕 인조(박해일 분)가 느끼는 감정의 심연(深淵)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역사의 해석은 광해군의 실리 외교를 망친 인조의 무능함과 외교 정세를 바로 읽지 못한 척화론(斥和論) 세력들의 아집이 만든 결과로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화 <남한산성>은 김훈의 소설 속 전개를 따르면서 조금은 다른 시각을 취한다. 영화 속에서는 외세를 배척하는 척화론과 화친외교를 통한 주화론(主和論) 그 어떤 것도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없음을 강조한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같지만 방법이 다른 하나의 신념으로 해석한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척화론자의 중심인 예조판서 김상헌은 임진왜란 때 병사를 보내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와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인물로 그린다. 그와 대결구도를 이루는 이조판서 최명길은 더 많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잠시 동안의 치욕은 견딜 수 있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인물로 그린다.

이러한 구도 아래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의 연기가 표현하는 갈등은 김상헌과 최명길이 마치 살아 돌아온 것처럼 불꽃이 튄다. 여기에 극한에 이른 신하들의 대립, 죽어나가는 백성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인조의 자괴감과 고뇌를 표현한 박해일의 연기는 영화의 몰입감을 높인다. 배우 박희순, 조우진, 고수 등 선 굵은 배우들의 주변인물 연기도 영화의 짜임새를 더한다. 

영화의 결말은 역사의 기록으로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를 대하는 이들의 고뇌들을 따라가는 영화의 시선은 신선하면서도 은은하게 가슴을 울리는 무게감이 있다. 현실과 그 현실을 영화가 재현한 역사를 비교해 보는 것은 새로운 통찰력을 얻는 개안(個眼)의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