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협동조합들이 일반 주식회사 형태의 대기업 수준을 뛰어넘어 인수합병과 투자확대 등 놀라운 경영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이미 다국적기업으로 진화한 낙농업 협동조합, 세계적인 키위 브랜드로 도약한 협동조합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조합은 ▲효과적인 산지 조직화 ▲품목별 생산량 조절 ▲맞춤화된 농가 컨설팅 등으로 세계적 수준의 농업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 썬키스트의 라이센싱 상품군(출처=썬키스트 홈페이지)

썬키스트, 철저한 산지 조직화와 품목별 생산량 조절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글로벌 농업 협동조합은 미국의 썬키스트다. 오렌지를 전문으로 하는 애리조나 주와 캘리포니아 주 농민 6000명이 모여 만든 비영리 기업이다. 연매출이 10억 달러(1조 2000억 원)를 넘는 썬키스트는 원래 감귤 재배자들의 가격 경쟁을 피하고 상호 협조를 통해 자본 조달을 쉽게 하기 위해 1893년 설립됐다. 썬키스트는 오렌지, 자몽, 카라카라 등 감귤류에 철저하게 집중하고 있는 품목 협동조합이다.

썬키스트는 55%를 미국 국내에서, 45%를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다. 가장 큰 수익원은 라이선싱 사업이다. 1년에 20억 달러(2조 4000억 원)규모로 감귤류 상품 판매의 2배다. 77개국 에서 700여 종의 식품이 썬키스트 상표를 달고 판매되고 있다. 훼미리 헬시, 후레쉬 주스박스, 머스켓, 소다 등은 썬키스트의 주력 상품인 감귤류 제품에서 비껴가 있지만 썬키스트 상표를 달고 판매되는 제품들이다.

썬키스트가 광범위한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철저한 산지 조직화 전략이 숨어 있다. 썬키스트는 지역 별로 거래소 제도를 도입해 조합원들이 상품을 가져다 놓고 연합회에 쉽게 납품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역 거래소는 품질 관리와 유통을 전담하는 산지 플랫폼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타오바오가 농촌에서 썬키스트 모델을 참고해 지역 유통 센터를 도입했다.

제스프리, 계약재배로 글로벌 브랜드 도약

제스프리는 뉴질랜드의 키위 협동 조합이다. 이 기업은 키위로 연 수입 15억 6000만 뉴질랜드 달러(1조 4000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 전세계 키위 시장의 30%를 장악한 제스프리는 15년 간 연구개발 끝에 ‘골드키위’ 품종을 개발해 한국, 중국, 스페인, 독일 등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골드키위는 일반 키위보다 당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병충해 저항도 강해 우수한 품종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스프리는 각 국가와 지역마다 계약재배 농장을 둔다. 한국은 제주도에서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이탈리아, 일본과 함께 북반구의 핵심 계약 재배 지역이 한국 제주도다. 제스프리는 제주도 농가들과 계약하며 철저한 품질관리,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약속했다.

이헌목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대표(전 한농연 연구소장)는 “제스프리 키위 성공 사례는 한국 농가들이 제일 참고해 볼 만한 품목별 조직사례”라고 평가했다. 특히 제스프리는 품종개선을 위해 연구개발(R&D)투자를 하고 우수 품종을 농가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제스프리의 경영철학을 눈여겨 볼 만 하다. '아무리 유통과 마케팅을 잘 해도 원물이 좋지 않으면 성공은 어렵다'.

글로벌 협동 조합들이 가능한 이유는...'품목조직화'

이들 ‘글로벌 협동조합’들이 성공한 비결은 하나같다. 바로 ‘품목조직화’다. 지역 별로 조직화를 하게 되면 지자체와 농민 간의 협업을 추진하기는 쉽지만, 소비자와 괴리되기 쉽다. 일선 소비자들은 ‘지역’이 아니라 ‘품목’을 의사결정 기준으로 하여 농축수산물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기술정책과 경영전략을 연구하는 이삼열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농업은 공급자가 생각하는 시장 세그먼트(시장의 구분)와 소비자 기준의 시장 세그먼트 간의 괴리가 매우 큰 산업이다. 마케팅이 잘 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60년대 말부터 지역 농수협 위주로 조직화되어 온 구조적 한계 때문에 농축수산물 생산량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기 힘든 것이다.

글로벌 협동조합들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말 그대로 ‘글로벌 비즈니스’다. 단일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원재료를 경제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여러 국가의 가치사슬을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제스프리와 썬키스트는 원재료 조달과 판매처 다양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글로벌 다각화 사례다.

▲ 네덜란드의 어느 라보뱅크 지점(출처=라보뱅크 홈페이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특화도 중요

네덜란드의 라보뱅크는 ‘협동조합 은행’이다. 자산 규모 6700억 유로로 세계 30대 은행 중 하나다. 라보뱅크는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농촌 지역 신용협동조합들이 연대해 은행을 만들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농업인을 조합원으로 하는 신용협동조합은 도시 지역 중소 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신용금고와 연계해 자산 규모를 늘려 갔다.

처음 라보뱅크는 다른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조합원의 농산물을 판매해 주거나 농자재를 공급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신용협동조합 업무를 바탕으로 한 금융 사업에 집중했다. 대신 보험 자회사, 투신자회사, 국제금융담당회사로 구분했다. 최근 라보뱅크는 애그리테크 벤처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라보뱅크는 네슬레,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로켓스페이스와 함께 1000개의 농축수산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테라’(Terra)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헌목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대표는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이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농협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 분리해야 비즈니스 전문화를 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알라푸드의 제품군(출처 : 알라푸드 홈페이지)

과감한 글로벌 인수합병

글로벌 협동조합들의 또 다른 핵심 역량은 과감한 글로벌 인수합병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최대 식품 협동 조합인 알라 푸드(Arla Food)는 2012년 영국의 낙농업협동조합 밀크링크를 인수하며 유럽 최대의 다국적 협동조합으로 도약했다. 무려 세 개 국가의 협동조합이 하나의 경영체로 묶인 사례다. 같은 해 알라 푸드는 독일의 미르히 유니언 호치펠(Milch-union Hocheifel)을 인수합병하며 덴마크, 스웨덴, 영국 이외에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시장으로도 진출했다.

알라푸드는 인수합병으로 1만2700명의 조합원들을 장악하며 유럽 시장의 강자로 군림한 것 외에도 연구개발 역량까지 갖게 됐다. 미생물 연구, 영양학 연구 등을 바탕으로 친환경 식품 공정에도 손을 뻗게 됐다. 알라푸드의 한 해 매출액은 102억 6200만 유로(2015년 기준)에 달한다.

국내 농협 관계자도 글로벌 협동조합들의 국제적 인수합병 사례에 대해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조합원이 점점 줄어드는 농협이 참고해 보아야 할 사안”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농업협동조합의 기능을 국내에만 한정 짓지 않고, 경계 확장이 필요할 듯 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