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업의 대명사인  애플은 아이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혁명을 일으켰으며, 하드웨어에 특별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거대한 트렌드를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아이폰X 공개에서 엿보인 불안감, 기술적 미비,  신성장 동력 부재라는  오래된 우려와 스티브 잡스라는 시대의 아이콘과 관련된 딜레마가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 출처=플리커

1. 애플답지 않은 애플의 면모
애플은 지난 달 2017년 회계연도 3분기 실적발표에서 순이익은 87억2000만달러, 매출은 454억1000만달러로 집계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순이익이 무려 78억달러나 늘어 큰 폭의 성장세를 보여줬다. 3분기 아이폰 출하량은 4100만대로 알려져 전년 동기와 비슷했다.

3분기가 신제품 비수기여서 아이폰 출하량이 4100만대에 불과한 것은 심각한 타격이 아니다. 시장조사 회사 IHS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기준 애플이 처음으로 중국 화웨이에 밀려났으나, 다시 삼성전자에 이어 2위로 올라설 것은 확실시되고 있다.

고무되는 대목은 아이폰 의존도를 크게 낮춘 것이다.  아이폰은 그동안 애플 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했으나 올해 3분기 55%로 크게 낮아졌다. 반면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73억달러로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전체 매출에서 16%를 차지해 아이폰 다음으로 높았다는 설명이다.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iOS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며, 73억달러 매출 규모는 경제 잡지 포춘이 선정하는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성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아이폰 의존도에서 탈피, 일종의 체질개선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애플의 주력은 여전히 아이폰이며, 올해 하반기 공개된 아이폰8과 아이폰X의 성적이 중요하다는 점은 애플도 잘 알고있다. 문제는 아이폰8과 더불어 야심차게 공개된 3세대 애플워치를 둘러싸고 잡음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8은 아이폰X와 달리 기존 아이폰의 문법을 그대로 차용했다. 패블릿 기조를 따라가지만 아이폰7S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로젠블랫증권의 쥔 장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이폰8 선주문량이 아이폰7은 물론, 아이폰6보다 낮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되면 아이폰8 생산을 계획보다 크게 줄여야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폰X 생산일정도 제조정해야 하는 악재와 만나게 된다.

▲ 아이폰X. 출처=애플

'애플의 주인공인 아이폰X가 아닌 3세대 애플워치'라는 말도 나오는 가운데 새로운 애플워치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아이폰과 독립해 독자적인 통화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각광을 받았지만, 핵심인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셀룰러 자체에 기기적 오류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X의 페이스ID 인식 오류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이폰 공개 행사에서 페이스ID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는 행사를 준비하던 중 일부 직원이 테스트로 페이스ID를 작동해 자동 잠금장치가 설정돼  벌어진 헤프닝으로 알려졌으나 예전의 애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폰X의 OLED 수급이 예정대로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 1000달러를 넘기는 아이폰X 가격에 고가 부품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잘 알려진 가운데, '삼성디스플레이가 제공하는 OLED가 아이폰X에 제대로 수급될 것인가'는 애플에겐 골치아픈 문제다. 하드웨어 수직계열화에 나서고 있는 애플이 다양한 각도에서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조절하고 있지만, 효과를 둘러싸고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애플의 전성기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폰아레나는 지난해 분석가 오펜하이머 등의 멘트를 인용해 향후 10년간 아이폰 판매가 침체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7년 총 2억4500만대의 아이폰을 팔겠지만 그 이후로는 성장 동력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2017년이 지나면 사용자들이 고가의 아이폰에서 이탈해 새로운 단말기를 찾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아이폰만의 강점을 보여주기 어렵고, 고가의 단말기에 대한 매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시만해도 '설마'한 분위기지만, 오펜하이머의 주장이 나온 후 1년이 되어가는 현재, 설마는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 3세대 애플워치. 출처=애플

2. 신성장 동력 부재

애플은 아이폰X를 공개하며 A11로 대표되는 모바일 AP 기능을 크게 신장시켰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증강현실이다. 올해 WWDC 2017에서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와의 협력을 강조했던 애플은 A11에 이르러 아이폰X에 영향을 미치는 증강현실 기술력을 많이 공개했다.

문제는 한정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앤드루 우어퀴츠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말 "애플은 차세대 혁신을 주도할 용기가 없다"고 단언하면서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고 꼬집었다.

최근 실험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차만 봐도 나름의 가능성 타진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애플은 2014년부터 타이탄 프로젝트를 통한 자율주행차 가능성에 집중했으며 2015년 테슬라 직원을 연봉 60% 인상 조건으로 스카우트했다. 이후 유럽의 자동차 연구가 폴 퍼게일을 영입했으나 지난해 초 포드 출신의 디자이너인 스티브 자데스키가 회사를 떠나고 하드웨어 출신인 밥 맨스필드 기술담당 수석 부사장이 프로젝트 타이탄 수장에 오르며 ‘애플카도 주춤거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증강현실은 아이폰X를 통해 일정정도 구체화되고 애플워치에도 연착륙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전격적인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 애플카. 출처=애플

3. 스티브 잡스 딜레마

애플은 아이폰8과 아이폰X, 3세대 애플워치를 공개하며 역사적인 이벤트의 무대를 신사옥 애플파크의 스티브 잡스 극장으로 낙점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혁신으로 돌아가 새로운 아이폰X를 공개했다는 무언의 암시였다. 공개 행사 초반 스티브 잡스의 육성이 흘러나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애플에게 스티브 잡스는  딜레마다. 스티브 잡스가 추구한 큰 그림이 팀 쿡의 시대에서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X에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은 OLED를 탑재하며 갤럭시 본능을 보여줬다.

스티브 잡스는 4인치 아이폰을 고집했으나 팀 쿡의 애플은 삼성전자의 방식인 패블릿 기조를 노골적으로 추구했으며, 아이폰의 극단적인 베젤리스 스타일도 갤럭시S8에서 시작됐다. 아직 태블릿에 사용되고 있으나 애플펜슬의 존재는 스타일러스 스마트 단말기 방향성이 갤럭시노트 시리즈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내년 출시되는 아이폰9에 6.4인치 이상의 OLED가 탑재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애플은 과거 스티브 잡스 시절 고수한  4인치 아이폰과 완전히 이별하는 셈이다.

애플은 아이폰X를 공개하며 스티브 잡스에 집중했으나, 역설적으로 스티브 잡스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보여주고 있는 혁신에 가까워지며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이 아닌, 합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장 아이폰8과 아이폰X를 공개하며 기존 아이폰 문법을 계승한 아이폰8과 새로운 실험의 결정체인 아이폰X 선택의 주도권을 소비자에게 넘기는 의외의 일도 벌였다. 이러한 행보가 당장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스티브 잡스라는 브랜딩에 매료된 전통적인 지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