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산만한 것 아닌가. 과연 경제를 살릴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만난 대기업 임원의 얘기다.

현실을 보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정부가 지난 8월 말부터 발표할 것이라던 ‘가계부채 관련 대책’은 10월로 미뤄졌다.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개인이 진 빚을 정부가 나서 갚아주지 않는 이상 마땅한 대책이란 찾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개인과 기업의 신용과 직결되는 금리를 비롯한 금융정책을 보자. 정권이 바뀐 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잦은 만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은 어떠한가.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경제 빅데이터를 보유한 연구원 수준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거시적 경제와 금리정책에 대한 방향을 선도해야 할 중앙은행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가 빠진 채 통계자료만 발표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개인투자자조차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때마다 헤쳐모여를 반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 5월 이후 한국은행이 어떤 거시경제 정책의 조언자 역할을 했는지 눈을 씻고 찾고 싶지만 찾을 수 없다.

산업은 어떠한가.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 5위권에 안에 10여년째 랭크돼 있다. 이런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 자동차산업은 지금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서있다. 정부의 지원도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친환경차인 전기차와 수소차는 스테이션(충전시설) 인프라 구축이 병행돼야 성장한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기 위해선 GPS(글로벌위치추적시스템)는 물론 도로망도 재정비돼야 하고 도로교통법도 개정돼야 한다. 세계에서 자율주행차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는 독일의 경우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015년 기준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49조원, 미국과 일본 업체들은 20~30조원 정도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했다”며 “반면 현대·기아차는 8조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금액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이나 미국, 일본 등은 국가적으로 연구개발비에 대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일부 기술은 국가가 나서 함께 공동개발에 나서는 부분도 있다. 현대·기아차는 자체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고 정부 지원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현대·기아차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 시의성 있게 범국가적으로 주도해야 할 산업이 있다. 능력 있는 정부라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90년대 후반 DJ정부가 주도한 정보통신부문 육성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IT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다.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민간기업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경제부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산업마저 제2의 한진해운으로 전락시켜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4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야심차게 기획한 중소기업벤처부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경제컨트롤타워는 구성됐고 이달 들어 경제부총리 주재로 연일 합동경제 점검회의도 열리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경제부처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와 건설교통부만 눈에 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은행은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적폐청산을 선언한 정부라고 해서 거시경제나 산업육성책을 뒤로 미뤄도 된다는 가정은 성립할 수 없다. 국가 미래를 위해 옳지 않다.

국민은 지금 불안해 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 북한 핵실험, 미국 중앙은행의 자산축소, 반도체를 제외한 중공업부문 글로벌 경쟁력 약화, 중국의 사드보복 등. 뭐 하나 신통한 해결책이 보이질 않는다.

이러다 새 정부의 경제부처가 역대 가장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정부가 내세운 ‘적폐청산’ 중요하지만, 청산할 것은 청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병행했으면 좋겠다. 보수정권이 내세운 작은 정부를 지양하고 이왕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을 지향하는 진보 정부의 면모를 보여주려면 좌고우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4차산업혁명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것이 의외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