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아렌델 왕국의 두 공주 엘사와 안나가 정답게 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동생이 크게 다치자 엘사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둘은 더 이상 놀지 못하게 된다. “나랑 눈사람 만들래? 아니면 자전거라도 탈래?” 영문을 알지 못하는 안나는 함께 놀자고 수도 없이 방문을 두드리지만 닫힌 문은 열리지 않고, 이야기는 그와 함께 비극의 수렁으로 미끄러진다.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였던 故 장영희 교수가 쓴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한 장면이 소개된다. 탐 설리반이라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의 이야기인데, 어린 시절 외로움과 좌절감에 시름하던 그를 구원한 건 옆집 아이의 이 한마디였다고 한다. “같이 놀래?” 마침 함께 쇼에 출연한 아동문학가 마리아 슈라이버는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함께 하나가 되어 ‘같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기 문학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생각도 같았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비단 슈라이버뿐만 아니라 어쩌면 동서고금을 통해 쓰인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 주제는 ‘같이 놀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 보편성을 찾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 독일 유치원에 가던 날, 독일어를 전혀 못 하는 아이에게 “나랑 같이 놀래?”라는 뜻의 독일어 문장을 몇 번이나 말해줬는지 모른다.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게 흐르던지, 집에 돌아온 아이를 보자마자 친구들에게 그 말을 제대로 했는지 물어봤다. “아니, 어떤 친구가 나한테 먼저 같이 놀자고 말했어. 난 고개만 끄덕였고. 걔랑 하루 종일 같이 놀았어.” “같이 놀래?”라는 말이 문학의 본령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하나라고는 확신한다.

‘놀이’는 동사 ‘놀다’의 어간 ‘놀’에 명사형 어미 ‘이’를 붙여 만든 말이다. 두산백과사전은 놀이를 “신체적·정신적 활동 중에서 식사·수면·호흡·배설 등 직접 생존에 관계되는 활동을 제외하고 ‘일’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즉, 놀이란 생존에든 돈벌이에든 본래 쓸모가 없어야 하는 법이다. ‘놀’에 명사형 어미 ‘음’을 붙이면, ‘놀음’ 즉 ‘노름’이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놀이를 무용하거나 심지어 나쁜 것으로 깎아내리곤 했다.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호모 루덴스>를 쓴 요한 하위징아의 말이다. 그는 놀이야말로 문명의 시원이자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놀이가 문화의 산물이기는커녕 문화가 놀이에서 파생되었고, 우리가 지금 문화라 부르는 대부분이 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재미있게도 무속인이 굿을 하는 것을 가리켜 ‘논다’고 말하곤 하는데, 먼 옛날 놀이는 종교와 분리되지 않았었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종교뿐 아니라 예술, 법, 정치, 전쟁 등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놀이와 만나게 된다.

<겨울왕국>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만큼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 안나를 위해 궁전을 얼음 동산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엘사는 왕국 시민을 위해 한여름 왕궁 뜰을 아이스링크로 바꾼다. 언젠가 트롤은 엘사에게 마법의 능력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숙해진 엘사는 그 능력으로 사람들을 놀게 해준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주제를 이렇게 우겨도 되지 않을까? ‘서로가 다르더라도 함께 놀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없어.’

프리드리히 실러는 <미학편지>에서 “인간은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라고 썼다. 인간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이 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뽀롱뽀롱 뽀로로’ 주제곡 중) 문득 떠오르는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제가 가사를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친구와 노는 게 생활의 전부였으니까. 긴 연휴가 시작됐다. 음, 뭐하고 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