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에는 핸드페이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소비자는 정맥인식으로 출입부터 결제까지 한번에 가능하다. 출처: 세븐일레븐

# 기존 편의점과는 좀 다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어서오세요”라고 말하는 점원의 인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문인 ‘바이오 인식 스피드게이트’에서 손바닥을 스캐너에 가져다 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기존에 등록한 손바닥 정맥을 이용한 핸드페이 결제 시스템 덕분이다. 도시락과 음료 등이 진열되어 있는 냉장 코너로 갔더니, 상단에 위치한 센서가 움직임을 인식하고 개폐 쇼케이스가 저절로 열렸다. 도시락과 커피 하나를 고른 후에는 360도 초고속 스캐너 위에 물건을 올려놓기만 하면 계산이 완료되어 있다. 편의점에 들어왔을 때처럼, 손바닥을 결제 시스템에 가져다 대면 계산이 완료된다. 이곳에서는 카드, 현금, 모바일 결제 수단 등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 세븐일레븐 무인편의점 ‘시그니처’에서

#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재고 정리와 계산 등 해야 할 업무가 많다. 이럴 때 동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시간당 아르바이트 비용이 비싸서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손님이 붐빌 때는 계산대 앞에 줄을 서기도 하는 등 정신이 없는 상황도 있다. 이때 손님이 제주도까지 택배를 부치려고 하는데, 가격이 궁금하다고 말을 걸어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거나 할 때 인공지능(AI) 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아리아, 서울에서 제주까지 택배 가격이 얼마지?”라고 물으니 “네, 중량별로 차이가 있지만 최소 기준인 350g 이하가 5800원 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 2018년 CU 매장에 도입될 ‘인공지능(AI) 도우미’

어느 거리에서나 익숙하게 보이는 편의점이 4차 산업에 대비한 다양한 기술로 무장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 쇼핑’ 서비스를 제안하기 위한 유통업계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편의점 시장 규모(매출액 기준)는 20조4000억원으로 2015년 17조2000억원 대비 18.6% 늘었다. 편의점 시장의 연간 매출액이 20조원을 넘어선 것은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국내 1호점 매장을 선보인 후 처음이다. 전체 편의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만2611개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만개 시대에 접어들었다. 2015년 기준 2만8994개보다 12.5% 늘어난 수치다.

이처럼 편의점이 기존에는 점포수를 늘려 경쟁을 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산업의 변화에 따라 쇼핑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인 ‘똑똑한 편의점’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맥 결제에서 셀프 계산대까지…편의점 변했다

새로운 유통환경 구축을 위해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딛은 편의점은 1989년 편의점 1호점을 연 세븐일레븐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31층에 위치한 세븐일레븐의 무인편의점 ‘시그니처’에 가면 4차 산업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미래형 점포를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의 핵심 기술은 ‘핸드페이 시스템’이다. 사람마다 다른 정맥의 혈관 굵기나 선명도, 모양 등의 패턴을 이용해 이용 고객을 판별할 수 있다. 매장 입구에 마련된 핸드페이 등록소에서 롯데카드 번호와 손바닥을 스캔해 시스템에 등록하면 입장부터 결제까지 한번에 가능하다.

냉장 코너는 상단에 위치한 센서가 고객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자동 개폐 쇼케이스가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기존 매장의 오픈형 냉장 코너와 비교해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게 세븐일레븐 측의 설명이다. 또 물건을 고른 후에는 360도 초고속 스캐너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계산이 완료된다. 무인 계산대 형태라, 아르바이트생이 상주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현재 이곳은 테스트 매장이라 롯데월트타워에 입주한 계열사만 사용할 수 있지만, 세븐일레븐은 향후 2호점 출점 등으로 매장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문다영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 점장은 “이처럼 직관적인 구조에 익숙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의견”이라면서 “재고 관리나 시스템 작동 오류가 있을 수 있어 매장에 직원이 있지만, 예전처럼 계산을 주요 업무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매장 안에는 스마트 안심 담배 자판기도 있다. 출입 고객은 이미 정맥 스캔을 통해 신분 검사가 끝났기 때문에 점주가 없어도 미성년자의 담배 구입을 차단할 수 있다.

점주 입장에서 편리한 점을 꼽자면 ‘전자가격표시기(ESL)’다. 상품 가격이 바뀔 때마다 가격표를 일일이 바꾸지 않고 온라인에서 변경한 가격과 정보가 한꺼번에 적용된다. 또 점내 구역별 이동 인원이나 체류시간 등을 기록해 효율적으로 매장의 운영 정보를 구축할 수 있다.

▲ 서울 잠실동 롯데타워 31층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 출처: 세븐일레븐

BGF리테일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매장에 ‘인공지능(AI) 도우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BGF리테일은 지난 7월 SK텔레콤과 함께 인공지능 디바이스 ‘누구(NUGU)’를 활용해 ▲매장 근무자의 고객 응대 및 점포 운영 질의·응답 안내 ▲점포 위급 사항 시 신고 ▲편의점 고객 대상 주문·배송 서비스 ▲인공지능 기반 신규 사업 모델 발굴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회사는 우선 매장 근무자가 궁금해 하는 사항이 생기면 언제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도우미’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또 고객이 ‘누구’를 통해 CU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주문하고 배송을 요청하면 배송 전문업체가 지정된 주소로 상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계획 중이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편의점 특성상 근무자의 이동이 잦은 편인데 ‘인공지능 도우미’ 시스템이 매장에 도입되면 신규 근무자도 보다 손쉽게 매장 근무를 할 수 있다”면서 “점포 운영 효율성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점포에 직접 적용되려면 시일이 걸리는 만큼, 내년쯤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빅데이터 기반 자동 발주 시스템인 ‘스마트발주’는 전산 시스템이 점포별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동으로 적정 재고량을 산출해줘 인력을 대체한다. 평일과 주말 매출 데이터를 구분하고, 실시간으로 재고량을 반영하는 등 정보 분석력과 정확도가 고도화된 시스템이다. 편의점 운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발주를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대체함으로써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 CU는 매장에 ‘인공지능(AI) 도우미’ 도입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출처: CU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지난 5월 KT와 협약해 빅테이터를 활용한 미래형 점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주요 협력사항으로는 ▲점포 ICT 환경 인프라 혁신 ▲GS리테일-KT 빅데이터 연계 분석을 통한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 제공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해피콜 시스템 고도화를 통한 고객 서비스 혁신 ▲인공지능 헬프데스크 구축 등이 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이를 통해 미래형 점포를 구축하고 경영주와 고객에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현재 양사가 미래형 점포를 선보이기 위해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마트24는 지난 3월 스타필드코엑스몰 봉은사 출구에 ‘스타필드코엑스몰 1호점’을 열었다. 이곳은 미래형 편의점을 콘셉트로 국내 편의점 최초로 셀프 계산대를 선보였다. 유동인구가 많고 구입 상품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쇼핑몰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신속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 이마트24 셀프계산대 모습. 출처: 이마트 24

김성영 이마트24 대표는 4차 산업과 관련 “혁신적인 기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편의생활연구소에 이종의 연구를 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아이디어를 수렴해 편의점에 맞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미 무한경쟁에 돌입한 편의점은 이처럼 4차 산업 혁명에 걸맞은 쇼핑 환경 변화에 대비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라면서  “무인 편의점이나 인공지능 도우미 등 미래 유통 채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기술적 한계와 투자비 등의 문제로 시스템 변화와 정착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편의점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 역시 일부 매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대중화로 접어들기에는 너무 시초 단계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주문 시간 단축과 인건비 감소 등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