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는 이제 시작입니다.” 김창한 블루홀 PD가 그랬다. 얼추 맞는 말이다.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 정식 출시를 하지도 않았으니. 얼리 억세스(Early Access) 출시이니 가게로 치면 가오픈 상태다. 어떻게 보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런 배틀그라운드가 스팀 역사를 뒤바꿨다. 역대 최고 동시 접속자 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나 ‘도타2’ 같은 걸출한 글로벌 히트작을 넘어선 결과다. 누적 판매량이 1200만장에 달한다. 한국 게임 산업 역사에도 유례없는 일이다. 아직 얼리 억세스 ‘신분’이니 앞으로 어떤 큰일을 칠지 아무도 모른다.

정작 장병규 블루홀 의장은 공을 우리 업계로 돌렸다. “이 성과는 한국 게임 산업이 오랜 시간 독특한 경쟁력을 쌓아온 결과”라고.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우리 게임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단 진단이 제법 오래 전부터 이어졌으니. “이제 우리가 게임 강국인진 모르겠어요. 한국인이 게임을 잘하는 건 맞지만.” 업계 관계자 말이다.

국내 젊은 게이머 사이에선 한국 게임을 폄하하는 분위기까지 포착된다. ‘한국 영화는 수준 떨어져’나 ‘국산차보단 외제차지’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일까. 현상엔 원인이 따른다. 한 인기 게임 BJ가 기자한테 이랬다. “종종 국내 게임사에서 제안이 와요. 제 방송에서 신작 게임 하는 모습을 보여달란 거죠. 돈 받고 하는데 게임이 재미없어서 못 하겠을 때도 있습니다. 모바일 RPG(역할수행게임) 장르 뽑기형 게임이 대부분이니까. 어떤 회사는 ‘현질(유료과금)’해서 뽑기 하는 모습만 방송해달라 하더군요. 씁쓸했죠.”

요즘 한국 게임의 문제점으로 흔히 제시되는 2가지가 모두 들어 있다. 장르 획일화와 과도한 과금 구조 문제 말이다. 매일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모바일 RPG가 대놓고 게이머 지갑을 노리는 형국이랄까. 중소 개발사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대형 퍼블리셔 간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재미있는 게임’보단 ‘돈이 될 것 같은 게임’을 먼저 고려해야 생존 확률이 높아지니까. ‘체제에 순응해야 산다.’

▲ 출처=블루홀

사람들은 생존이 어려워질수록 과거 성공법칙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다름’엔 우려를 표한다. 우리 게임업계 역시 성공법칙이 매뉴얼처럼 고착화되면서 함께 실패에 다가서는 양상이다. 우리 업계가 감흥 없는 게임 양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게이머 다수가 외산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최근엔 떠났던 국내 게이머들이 배틀그라운드로 돌아오고 있다. 글로벌 유저들과 자기장이 흐르는 외딴섬에서 생존 경쟁에 한창이다. 분명 배틀그라운드는 성공법칙 매뉴얼을 외면한 흥행이다. 게임 면면이 그렇다. 매뉴얼 바깥에 생존뿐 아니라 더 커다란 기회가 있다는 점을 몸소 알려주고 있다.

‘배틀그라운드 생존법’을 명료하게 정리하긴 쉽지 않다. 얼리 억세스 단계이니 시기상조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새로운 매뉴얼엔 우리가 믿어온 생존법칙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다는 것, 게임한류 불씨를 살리는 방법은 더더욱 아니었다는 지적이 담길 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배틀그라운드의 성공법칙을 모방할지 모른다. 배틀로얄 장르에 더 극적인 비즈니스모델을 심어 제2의 배틀그라운드 돌풍을 노릴지도. 모르긴 몰라도 ‘배틀그라운드 생존법’과 무관한 시도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