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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섭의 특허로 읽는 손자병법 이야기] 제10편 지형(地形)
김수섭 상승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09.12  07:43:31
   
 

원료 공급자부터 최종 소비자까지의 가치사슬을 조사해 보면 제품 시장의 특성을 알 수 있고 기업이 처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다 경쟁기업과의 기술력, 조직력, 자금력 등의 정보를 보태어 따져보면 망할 것인지 흥할 것인지 미래가 보인다.

손자가 제1편 시계(始計)에서 싸우기 전에 승부를 헤아려 볼 수 있으며 다산승(多算勝) 소산불승(少算不勝)이라고 말하고 제3편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白戰不殆)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자신의 제품만 생각하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제품 시장의 특성도 잘 파악해 자신에게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살피고 자신의 능력과 경쟁 상대의 능력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제품 시장의 특성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지형(地形)의 특성과 유사하다. <손자병법> 제10편 지형편(地形篇)은 지형을 여섯 가지 종류로 분류하고 특성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을 기술한다. 또한 장수가 취해야 할 태도와 조직 관리 방법 등에 대한 내용들도 함축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지면 관계상 이번 칼럼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여섯 가지 지형으로는 사방이 통해 누구든지 오갈 수 있는 통(通), 들어갈 수는 있지만 돌아오기는 어려운 괘(挂), 자신이 들어가도 이익이 없고 상대방이 들어가도 이익이 없는 지(支), 입구가 좁은 애(隘), 지리가 험한 험(險), 상대와의 거리가 먼 원(遠)이 있다.

통(通)형은 자유시장과 유사하다. 누구라도 해당 제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경쟁시장이다. 남들보다 먼저 제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해 특허장벽을 쌓지 않으면 힘든 시장이다. 괘(挂)형은 해당 제품 시장에 진입은 쉬워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시장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에도 이익 창출이 어려운 경우일 것이다. 기업에게 이런 시장은 늪과 같으므로 피해야 한다. 지(支)형은 제품 시장의 발전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이다. 먼저 신제품 개발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다른 기업의 진행 상황을 살피다가 나중에 진입하는 2인자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제품 시장 진입로가 좁은 애(隘)형은 제품 시장 진입에 인허가 등이 필요하거나 매우 중요한 특허권 또는 노하우가 필요하거나 제품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못하고 유통단계가 까다로운 경우일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진입해 자리를 잡은 기업에게는 매우 유리하다.

험(險)형은 가치사슬에서 다른 참여자들이 매우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하는 경우일 수 있다. 이런 지형에 섣부른 진입은 위험하지만 틈새시장과 같이 특정 소비자의 요구를 잘 맞출 수 있는 기업의 경우 유리하다. 원(遠)형은 지리적으로 멀어서 경쟁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원정에 소요되는 비용 때문이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해외 시장 진출과 같은 장거리 원정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지형은 고정된 것이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형을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통(通)형의 시장 특성을 애(隘)형이나 험(險)형으로 바꾸어 선점할 수 있는 경우이다. 평지와 같은 통(通)형과 틈새시장과 같은 험(險)형에 대한 대응 방안을 지난 칼럼 제1편 시계(始計)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다시 강조하자면 평지와 같은 통(通)형에서는 제품 차별화를 추구하되 차별화를 보호하는 지식재산권을 성벽과 같이 높게 쌓아 경쟁 상대에게는 험한 지형으로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너무 단순한 제품이어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면 매력이 있는 제품 시장이 아니므로 진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제품 시장은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까워져서 초과이익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틈새시장과 같은 험(險)형은 소규모 신생 기업에게 유리할 수 있다. 까다로운 소비자의 기호를 맞추기는 어렵지만 먼저 진입해 자리를 잡고 나면 경쟁 상대가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제품 시장 진입로가 좁은 애(隘)형과 관련해 최근 고민을 이야기하자면, 고객 기업 중에 특정 유전자로부터 기인하는 질병을 미리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진단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있다. 이 기술은 기존 기술에 비해 매우 저비용으로 유전자 이상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어서 특허출원도 마쳤다. 이 진단 기술의 시장 특성을 살펴보면 최종 소비자는 환자지만 검사 여부 결정은 의사가 결정한다. 의사들이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인다면 진입은 쉬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의료업계는 진료의 안정성을 추구해서인지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을 쉽게 바꾸지 않는 특징이 있고 최종적인 비용 지불은 의사가 아닌 환자가 하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진단 방법을 변경할 유인(誘因)도 없다. 이런 이유로 최종 소비자까지의 제품 경로에 의사들의 고정관념이 장애가 되는 애(隘)형의 시장 특성에 가깝다. 손자는 애(隘)형의 경우 만약 상대방이 먼저 와 있고 수비가 잘되어 있다면 나아가지 말고 그렇지 않을 경우 나아가라고 했다(若敵先居之, 盈而勿從, 不盈而從之). 따라서 기존 방법이 고비용 외에 크게 문제가 없다면 직접적인 시장 진입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므로 뭔가 새로운 해결 방안으로 우직지계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우직지계로 이 기업에게 당장은 힘이 들더라도 기업과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라는 조언을 하려고 한다. 우직지계가 성공한다면 향후 소비자가 직접 유전자 진단 회사에 진단을 요구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릴 것이고, 이 기업은 확보한 특허권으로 차별화된 자신의 기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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