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지배적 남용행위를 둘러싼 퀄컴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법원이 기각, 향후 전개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퀄컴은 즉각 대법원에 항고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4일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청인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시정명령으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소명되지 않는다"며 기각 결정했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으로 퀄컴이 심각한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라며, 금전적인 손해도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이미 불법적인 일(시장지배력 남용)로 이득을 얻는 상황에서 시행명령으로 특별한 손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는 상황판단도 깔려있어 보인다.

나아가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라이선스 계약들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고, 퀄컴이 단말기 단계에서 자신의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를 포함한 모든 특허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각 라이선스 계약들이 퀄컴의 FRAND 확약(표준필수특허에 관하여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할 것이라는 기업간 확약)에 부합하는 한, 퀄컴이 지금은 물론 향후 라이선스 계약들에 따라 자신의 표준필수특허에 대한 특허실시료를 추구하거나 받는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시정명령 자체에 대한 법리적 공방은 계속되지만 '시정명령 중단'을 요구하는 퀄컴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장의 시정명령 중단을 소원하던 퀄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퀄컴은 5일 즉시 입장자료를 발표하며 반발했다. 퀄컴은 "공정위의 의결이 사실관계 및 법리적 모든 측면에서 근거가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적법절차에 관한 퀄컴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부정한 심의 및 조사의 결과라는 입장"이라며 " 퀄컴은 공정위의 결정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법률 하에서 부여된 지식재산권에 대한 부적합한 규제를 추구함으로써 공정위의 권한 및 국제법의 원칙을 벗어났다는 입장이며, 이러한 점을 계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상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 출처=픽사베이

부당계약과 지적재산권 침해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 LTD를 대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퀄컴에 칩 공급을 볼모로 특허권 계약을 강요하는 행위를 멈추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통신용 모뎀 칩세트 시장의 강자인 퀄컴이 시장지배자적 위치를 활용해 '제품 끼워넣기' 등의 부당계약을 맺고 있다는 논리다.

퀄컴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올해 2월 21일 퀄컴은 서울고법에 퀄컴의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내는 한편 과징금 결정 취소 소송을 냈다.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긴급할 필요가 있을 때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 행정소송법 23조 2항을 들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시정명령 효력정지를 막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 만약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효력을 발휘하면 퀄컴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등 제조사들과 새롭게 라이선스 계약 협상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선스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퀄컴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그리고 그 재앙은 점점 현실이 되고있다. 

최근 유럽연합은 구글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수준의 과징금인 3조2520억원을 부과했다. 시장지배력 위치를 남용해 반독점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산업의 섹터는 다르지만 현재 퀄컴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이에 구글은 최근 구글쇼핑 개선안을 제시하는 등 사태해결의 접점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냉엄한 현실'이다.

만약 구글이 유럽에서 철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구글이라는 거대 플랫폼이 사라지면 유럽 ICT 기술은 발전할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이지만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당장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집권하던 프랑스가 한때 독일과 협력해 `나는 찾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콰에로(Quaero)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유럽 토종 포털 사이트 구축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구글이 존재하기 때문에 콰에로가 침몰했다 하겠지만, 실은 구글만큼의 매력적인 플랫폼을 구축하지 못했기에 무너진 것이다.

심지어 시장 개척자인 구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힘의 진공상태는 자생능력을 일정정도 길러주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시장은 철저하게 '니즈(요구)'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물론 구글 논란은 조세회피와 미국과 유럽의 외교적 대립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지만, 이는 독점 플랫폼의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곰곰히 생각할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지식재산권 가치를 둘러싼 이슈도 있다. 퀄컴은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시절부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해 현재의 라이선스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갑질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지식재산권의 본연적 가치를 흔드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연구개발로 특허를 개발해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를 시장지배자적 남용으로만 해석하면 누가 연구개발에 나서겠는가"라며 "퀄컴 사태는 시간을 두고 면밀하게 살펴 무리한 갑질과 정당한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지금 공정위의 행보는 너무 빠르다"고 꼬집었다.

공정위는 몸풀기...퀄컴과 애플의 전쟁이다
공정위의 퀄컴에 대한 과징금과 시정명령은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있다. 이 문제는 한 국가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가 참고하는 일종의 교과서가 될 전망이다. 만약 퀄컴이 시장지배자적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최종 확정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측간 공방에 애플의 존재가 드러났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번 공정위 판단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애플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퀄컴과 치열한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8월 퀄컴와 애플의 특허 침해 관련 분쟁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고 정식 발표했다. 지난 7월 퀄컴이 애플 아이폰7에 적용된 기술 중 일부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아이폰7 미국 수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한 일종의 '화답'이다. 이에 앞서 두 회사는 올해 1월부터 특허 분쟁을 치르고 있다.

현재 애플은 아이폰을 위해 전세계 200여개가 넘는 협력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는데, 특히 모뎀 칩은 지난 2011년 이래 퀄컴과 독점 계약을 맺고 공급받고 있다. 그리고 퀄컴은 막대한 리베이트 비용까지 지불하며 모뎀 칩을 생산 단가 이하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7에 인텔 모뎀 칩을 채택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리베이트까지 받아 챙기며 생산 단가 이하에 모뎀 칩을 공급받던 애플이 돌연 인텔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내막이 있다. 최근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추월을 당한 인텔은 지난해부터 주력인 시스템 반도체를 넘어 메모리 반도체, 나아가 파운드리 전반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브룩스톤(Broxton) 플랫폼을 비롯해 소피아(SoFIA) 3GX, 소피아 LTE, 소피아LTE2 상업용 플랫폼 및 체리트레일(Cherry Trail) 출시를 취소한다고 밝힌 대목이 극적이다. 암(ARM) 진영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SoC(System on Chip) 시장에서 발을 빼는 대신 5G를 중심으로 사물인터넷, 메모리 반도체, 클라우드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마이크로아키텍처 제품을 재개발하고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등 나름의 수를 썼지만 효과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외면했던 영역으로 다시 재진격한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 연장선에서 인텔은 2010년 인수한 독일의 인피니온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애플 아이폰 오리지널부터 아이폰4까지 모뎀칩을 제공했던 인피니온을 통해 애플 아이폰7에 '선'을 댔다. 아이폰4 이후로 아이폰에 모뎀 칩을 제공하던 퀄컴은 말 그대로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이 때 한국의 공정위가 등장했다. 인텔과 협력한 애플이 퀄컴과의 독점계약을 위반한 상태에서 "(애플이) 한국 공정위의 반독점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퀄컴이 약 1조1300억원에 이르는 리베이트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고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퀄컴이 아이폰7 미국 수입중단을 요청했고, ITC가 8월부터 본격적인 실태조사에 나선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정리하자면 애플이 모뎀 칩 공급을 아이폰7에 이르러 퀄컴에서 인텔로 변경했고, 퀄컴은 독점계약 파기에 따라 지금까지 제공하던 리베이트 제공을 거절하자 애플이 '한국 공정위 조사에 애플이 협조했다는 이유로 리베이트를 주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소송을 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퀄컴이 맞대응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공정위와 퀄컴간 분쟁을  단순하게 한국이라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제한적인 사태가 아닌, 애플과 퀄컴의 미래사업 전반을 둘러싼 각축전이라는 큰 그림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IT업계는 상당한 온도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퀄컴이 시장지배자적 위치를 통해 갑질을 한 것이 사실이며, 이는 분명하게 제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오픈소스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협력을 통해 제조사와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제조사, 특히 대 퀄컴 전선의 핵심에 선 애플의 '야비한 행동'이라는 비판도 상당하다. 애플이 로열티를 아끼기 위해 퀄컴을 이용하고 있다는 논리다. 나아가 애플은 퀄컴과 소송전을 벌이는 한편 하청업체인 폭스콘, 페가트론 등을 움직여 이들이 퀄컴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을 중단시켰다는 의혹까지 받는 상황이다.

일단 퀄컴은 지난 5월 애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하청업체들을 제소했고, 애플을 상대로 이들 하청업체와의 라이선스 협약을 불법적으로 침해한 데 대해 별도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미국의 테크 저널인 <FUTURUM>의 올리버 블랜차드(Olivier Blanchard)는 이를 `애플의 권모술수(Clever as it is insidious)`로 정의하기도 했다.

공정위, 애플에 마음줬나...법원 신중한 결정내려야  

퀄컴과 애플의 전쟁이 점입가경으로 흐르며 공정위의 판단과 법원의 시정명령중지신청 기각, 이에 따른 퀄컴의 대법원 상고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구글과 오라클이 벌이는 세기의 특허 대결만큼 모두의 시선이 퀄컴과 애플의 전쟁에 쏠리고 있다.

그렇지만 공정위의 최근 행보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최근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각 나라 규제당국의 제재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공정위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구글과 페이스북를 겨냥해 빅데이터 독점을 이유로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으며, 가계통신비 인하 정국에서 통신사들을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최근 ICT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의 총수 지정도 공정위의 작품이다.

그런 규제의 나비효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약정할인율 25% 인하 정국에서 거세게 통신사를 압박한 것은 큰 틀에서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것이겠지만, 궁극적으로 보조금 영향을 제한적으로 받는 애플의 위세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라며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규제 일변도로 나선다고 해도 규제를 당하는 쪽에서 상대적인 편차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 정권 초기에 힘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좋지만 퀄컴 분쟁 사례의 경우 지식재산권과 시장 독과점을 면밀히 구분하지 못하는 등 실기도 엿보이는 만큼 법원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