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계에 정말 다양한 공공기관이 있지만, 농어민들의 실생활 문제를 맞춤형으로 해결해 주는 조직은 없습니다.”

백재현 국회 예결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농어업 정책은 정말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농어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 대안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사단법인 ‘한국 농어촌 빅텐트’를 발족시켰다. 농어업계 전문가와 유통, 금융, 건설, 에너지 등의 관계자들이 함께 농어업 정책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조직을 만든 것. 

최근 농업계의 큰 화두였던 살충제 계란 사태, 계속되는 초여름 가뭄과 물 관리 문제, 농촌 태양광 정착을 위한 정책 토의 등 굵직한 현안들을 연구하고 컨설팅, 기술개발, 교육 등으로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각오다. 

▲ 백재현 국회 예결위원장. 사진=이코노믹리뷰 천영준 기자

“주민들 가르치기보다 해결책 손에 쥐어 줘야”

농어촌 빅텐트가 만들어지는 데는 백 위원장의 지방의원, 지방자치 운동 경력이 큰 역할을 했다.

백 위원장은 “지방자치 운동과 농어촌 운동의 골격이 비슷하다. 자꾸 주민들을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해결책을 손에 쥐어 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는 지난 1994년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연구소 실무감사를 지내며 농촌 정책과 자치 기반 마련을 위한 시민 조직화에 앞장섰다.

백 위원장의 검정고시 후배인 조용환 농어촌 빅텐트 총괄간사(여수세계엑스포 홍보실장)가 ‘빅텐트’ 조직 구성에 발벗고 나섰다. 백 위원장은 ‘명예이사장’으로 참여했다. 농어업계뿐만 아니라 정치, 금융, 유통, 건설을 아우르는 현장 네트워크 구성이 현실화됐다.

먼저 이개호 국회 농해수위원장(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승 농어촌 공사 사장, 참다래(키위) 농업의 권위자로 농민 운동을 총괄해 왔던 정운천 바른정당 의원이 힘을 보탰다. 사업가들도 함께했다. 조익형 곤충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육가공기계 전문 회사인 협진기계의 김장호 대표, 식품 포장업으로 7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강경계 지우케미칼 대표 등이다. 이외에 김종구 교보증권 상무, 김건우 수성대 부총장 등도 참여했다.

“농어업계에 포럼이 정말 많았죠. 정책과 현장의 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정부나 주요 기관들이 주도해서 우후죽순으로 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포럼이 꾸려집니다. 그렇게 하면 1년도 제대로 못 합니다.”

백 위원장은 농어촌 빅텐트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실제 연구, 교육, 컨설팅을 통한 농가, 관련 기업의 성공사례 발굴’을 이야기했다. “서로 교제하기 위한 포럼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안을 들고 와서 돌아 갈 때에는 대책을 갖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백재현 위원장이 주관한 '한국 농어촌 빅텐트' 간담회 사진=이코노믹리뷰 천영준 기자

“창농(創農) 기획과 컨설팅 위한 플랫폼”

“귀농, 귀촌을 국가적으로 장려하지만 정말 농어업이 매력적인 산업이라는 것을 보증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어민으로 살아 보라고 권유만 하지 말고, 도시민이 농어민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제대로 산업에 정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ICT나 서비스업에서 이뤄지는 ‘창업보육’이 필요하다는 거죠.”

농어촌 빅텐트는 농촌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귀농한 농부 등의 기반 마련을 위해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농민들에게 판로를 개척해 주기 위한 ‘동반성장 프로그램’도 구축할 예정이다. 롯데마트, 이마트 등의 기업들이 농어촌빅텐트가 지도한 농어업 스타트업, 농장들의 유통을 맡는다. 사업체로 제 모습을 갖춘 농어업 벤처들에게는 투자 기회도 소개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농업 일자리 정책’과도 기조를 같이하는 플랫폼인 셈이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농어업 일자리 관련 실태조사, 농어업 활성화 정책 인식 조사 등도 하기로 했다.

“농어업 기관간 실무협력 기구 필요”

“농어업 기관장 회의는 많지만, 농어업 기관들이 하나의 사안을 두고 실무적으로 협력하는 협의체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살충제 계란 건만 하더라도 농산물품질관리원 이외에 양계협회, 낙농진흥회, 농협 축산경제 등 다양한 조직이 연계되어 있는데 전부 농식품부와 식약처만 쳐다 보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를 묶어줄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농어촌 빅텐트 설립 작업을 주도해 온 조용환 총괄간사(전 여수세계엑스포 홍보실장)의 말이다.

산재하고 있는 농어업계 예산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도 연계 플랫폼이 효과적일 수 있다.

“스마트팜 관련 사업만 하더라도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 다양한 조직들이 중복 수행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시설과 장비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인력, 시스템)까지 완비하려면 ‘칸막이 예산’(각 기관별로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마다 차별화 없이 집행하는 예산)은 좋지 않습니다.” 백 위원장은 농어업계 기관별로 전문 분야가 다르지만 정작 수행하는 사업의 내용은 유사한 경우가 많다며 예산 구조조정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그러나 백 위원장은 제3섹터 기구를 통해 부작용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내비쳤다. “이들 예산들을 조정하고 다시 배분하는 데에는 행정 조직 개편 등 많은 숙제가 있으므로 빅텐트와 같은 제3섹터에서 농민, 기업과 이어주며 유기적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게 좋습니다.”

“농심(農心) 같은 추상적 접근이 아닌 전략 가르칠 때”

백 위원장은 “농식품부와 농협이 ‘농민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가르칠 때가 왔다”고 지적했다.

“6차산업, 4차산업혁명을 대비한 농업 융복합 등 좋은 말은 많습니다. 그런데 직불금, 지역 조합과 품목 조합간 갈등 등 농어업계의 숙제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미래 과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에요. 자꾸 추상적으로 접근하면서 정책 사업들을 늘려 나갈 게 아니라, 농어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재배, 유통의 어려움이나 고질적인 농업경영비 문제 등을 건드리면서 시책(施策)을 개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