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목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대표는 농협 감사위원장과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연구소장을 지낸 농업계 원로다. 25년 간 농식품부에 근무하며 한미간 쇠고기 2차 협상을 맡았고, 농림부 유통국장, 식량국장, 농산물품질관리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베테랑 관료 출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금 우리 농업계에는 뼈저린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한 메시지를 던져 왔다. 그리고  품목 조직 운동을 통해 농산물 유통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생산-유통-소비'를 아우르는 가치사슬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인터뷰에서 우리 농촌에서 사라진 협동과 품앗이의 정신을 되살리며 농민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30일 이헌목 대표를 만났다.

▲ 이헌목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상임대표(촬영=천영준)

품목조직화 운동을 주도한다고 들었습니다. 지역조합과 무엇이 다른가요.

“과거에는 농산물 작황이 좋으면 농민이 부자가 됐지만, 지금은 풍년이 들면 과다 생산이 돼서 망하는 지름길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생산 구조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농민들에게만 있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시장에 개입한다 하더라도 예산제약상 한계가 있어요. 지금의 지역 중심 조직에서 품목 중심 조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지역 중심 조직은 농업 개방이 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나 통하는 논리입니다. 게다가 지금 지역에 가면 사람이 없습니다. 농촌에 인력이 부족한데요. 농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생산도 조절하고, 더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출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네트워크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품목조직화 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농협도 지역조합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개발연대의 유산이죠. 그때는 농업 개방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간 경쟁 체제로 농산물 시장 구조를 짜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객관적으로 국산의 품질이 좋다고 해도, 기업화되어 있는 해외 품질 관리 체계를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농업의 기업화를 진행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품목별 조직화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공무원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왜냐 하면 공무원들도 스스로 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품목별 조직화를 하려면 농가들의 마인드를 바꿔야 하는데, 지금 할 일이 많은 농식품부 공무원들 입장에서 거기까지 신경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겠죠. 그러나 해야만 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농민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품목별로 조직화를 장려하고, 지원금도 품목 조직 위주로 제공하다 보면 분명히 구조조정이 될 것입니다.”

▲ 이헌목 대표가 집필한 '한국농업 희망 솔루션'(출처=교보문고)

스마트팜, 6차 산업 등 미래 과제를 강조해도 결국 품목별로 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추론도 가능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다들 작은 농사 짓는 사람이 열심히 판로 뚫고 상품 차별화 해서 대농(大農) 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모든 농민들이 하다 보면, 결국 같이 망하게 되는 길입니다. 농민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줘야 해요. 지금 우리 농촌에 품앗이나 두레 같은 협동 정신이 있는 줄 아십니까? 없습니다. 농민들이 각자도생으로 살아 가기 시작한지 꽤 됐습니다. 일단 농민들이 농촌의 과제들을 토의하고 해결할 수 있게끔 협력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미래지향형 농업을 일굴 수 있도록 기술이나, 가공, 유통 방법 등을 가르쳐야겠죠.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거라고 봅니다.”

조금 민감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으로 재직하셨는데,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 때 친환경 인증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의견은 어떻습니까.

“일단 기본 제도가 잘못됐죠. 일부 매체들은 ‘농피아’를 이야기하며 근절하라고 하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증 체계 자체가 부정확하다는 점입니다. 해외 인증 기업들은 생산, 포장, 가공, 유통, 소비 차원을 모두 관리 감독하고 사후 관리까지 해 줄 수 있게끔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체제가 전혀 수립되어 있지 않죠. 그냥 친환경 인증을 많이 해 줘도 문제가 없게끔 제도가 허술하단 말입니다. 친환경 인증이 정말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농산물 유통의 모든 ‘가치사슬’(생산,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과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생 기준 역시 농가들이 법적 기준보다 훨씬 높게 잡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농축산물을 값싸게 소비하려고 하는 구매자들의 탐심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저는 농민들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 져야 한다고 봅니다.”

품목 조직화든, 친환경 인증 문제든, 비슷한 결로 보입니다. 답이 없는 사안 같습니다.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답이 있는데 풀려고 나서지 않는 문제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 농촌을 매우 수동적으로 만든 게 우리 사회입니다. 무슨 문제만 터졌다 하면 정부와 농민을 상대로 비판하는데, 그래서는 절대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일단 생산 매커니즘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다음에 소비자들에게 정말 자신있게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투명한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국산이라고 외산보다 훨씬 좋은 가격을 받을 합당한 이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 품목조직 지원 강의 활동을 하는 이헌목 대표(제공=이헌목 대표)

품목조직화와 6차산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례는 없는지요.

“일단 제주도 키위가 좋은 사례입니다. 키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뉴질랜드 제스프리 사와 계약재배를 하는데요. 키위 품목 조직원들이 직접 뉴질랜드를 방문해서 작물을 재배하고 유통하는 과정, 사업화의 노하우 등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분석해서 성공시킨 사례입니다. 제주도 제스프리 골드키위는 3년 연속 싱가폴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를 본받아 국산 키위 생산자들이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이라는 품목조직을 만들어 수출도 하고 있죠. (제스프리와 계약한 농가는 제스프리가 공급한 골드키위를 재배. 국산 키위와는 품종이 다름) 문경 신미네유통사업단은 양파를 생산지도, 수매, 저장, 선별, 포장, 판매하는 영농조합법인입니다. 영농지도사들이 농가들을 방문하며 철저하게 기술을 전수하고, 유통 방법과 전략까지 상세하게 컨설팅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성공사례들이 자꾸 나오고, 그 성공한 조합이나 공동사업법인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품목별 사업의 의미가 널리 퍼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품목별 조직화 운동이 아직 활성화되진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농림축산식품부를 퇴직하고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이 운동이 정말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전까지는 농업 행정을 위해 매일 힘을 쏟았지만, 농촌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도출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그 길이 보입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경쟁력 있는 영농회사, 조합들과 협력해서 품목별 조직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뜻있는 인재들이 이 사업에 많이 힘을 보태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헌목 대표는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 서울대 농과대학 농화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미시건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재무전공)를 받고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 농림수산행정관, 농림축산식품부 시장 과장, 축정과장을 역임하며 한미 쇠고기 협상을 주도했다. 이후 농림부 유통국장, 농산물품질관리원장을 맡으며 농산물 유통 및 인증 정책을 기획했다. 2000년부터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약력

2008-현재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상임대표

2003-2008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농업정책연구소장

2000-2003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

1975-2000 농산물품질관리원장,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국장, 식량정책국장(행시 1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