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이 있습니다.

학교 가는 일 빼고는, 주로 집에서 낮과 밤이 뒤바뀌어 생활합니다.

연초에 아들에게 점잖게(?) 한마디 했습니다.

“나중에 아빠 은퇴 후, 엄마 나간 집에서 두 남자가 만나는 일은 없게 하자”

당시 아들의 표정이 어떠했는지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했는데 2학기를 앞두고, 대기업에 덜컥 입사되었습니다.

회사 O.T에 가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집을 나가기도 합니다.

2학기 일정으로 양해를 구해 11월로 입사를 미루어

당분간 집에 있는 시간은 좀 더 있겠지만,

그리 길지 않겠지요. ‘두 남자가 집에서 좀 마주쳐도 괜찮다’고

지금이라도 얘기를 해주어야 할까요?
 

휴가 중 팔순 넘은 부친이 칠십년 지기와

점심을 하는 자리에 동석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막 퇴원한 상태였습니다.

중학생 때 만나 평생 교류해온 얘기 등으로

두시간여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부친은 20여년 사모님 병시중하다가 혼자되어서

시골서 고독하게 사는 친구분이 영 걸리셨나 봅니다.

“S형! 이제 나이도 있으니, 운전 그만하고,

시골집도 정리하여, 아들 사는 도시로 거처를 옮기시죠.

거기서 친구들도 만나, 일단 말이라도 하고 지내야지요.

왜 일주일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내게 되는

고독 감옥에 자신을 스스로 유폐하시는 게요?

사모님 때문에 20여년 수고하셨으니, 자식 근처로 이사하여서

문화센터도 다니고, 동료들도 만나고 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게 간곡하게 재삼재사 부탁을 하는 겁니다.

헤어지면서 혼자 사는 그분에게 간식거리와

기름값 하라고 얼마간의 금일봉을 강제로 전하는 부친의 모습이 들어왔고,

교통사고로 폐차가 된 차를 대신해 벌써 장만한

중고차를 몰고 떠나는 친구분의 뒷모습이 교차해 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이분들의 재회는 상갓집에서 상대 없이 만나,

이렇게 늦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찾을 걸 하는 아쉬움을 토로할 것 같다는..‘
 

이제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일에 처음 동행한 나 자신도 돌아보았습니다.

이 또한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