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도 실험과 연습이 필요하다"

이대엽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 원장의 말이다. 첨단 농업만 강조해서 될 것이 아니라, 첨단 농업을 소화하여 실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그는 농협에서 26년 간 금융 전문가로 일하며 성과 중심의 경영관리를 체득한 진단, 평가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농업을 향한 이대엽 원장의 시선은 다른 누구보다 예리하다. 이 원장은 ‘작은 실험과 연습이 동반되지 않고 농민들에게 대규모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건전하지 못한 접근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를 지난 24일 안성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에서 만났다.

▲ 이대엽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 원장(촬영=이코노믹리뷰)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가 개관 1주년을 맞았습니다. 소감은 어떻습니까.

“작년 여름에 이 공간에 창농 컨설팅, 교육 전문 기관을 차렸을 때 참 막막했습니다. 우선 농협이 만든 기관인 만큼 농업계의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막중했구요. 김병원 회장(농협 중앙회장)님의 기대도 컸지요. 미래농업지원센터가 단순히 농업 일자리, 농업 비즈니스 육성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어 주고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기 위해 애쓰는 ‘해우소’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농업 컨설턴트 입장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농민들이 스스로를 차별화된 기업가로 정의하도록 도와주는 작업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센터의 모토가 ‘9시 뉴스’에 나오는 농업을 하기보다 ‘6시 내 고향’에 나올 만한 농업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입니다. 벼농사로 5000원을 번다면, 야생화나 약초와 같은 특성 작물은 10만원짜리 농사라고 할 수 있어요. 농민들에게 가급적 ‘틈새 농업’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스스로 기업가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계속 자긍심을 심어주는 게 미래농업지원센터가 할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컨설턴시가 조언을 해 주고 교육을 해 줘도, 농민들이 자조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일을 이루는 것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농민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필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미래농업지원)센터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 내 스마트팜(촬영=이코노믹리뷰)

최근에 시행한 사업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어떤 것인가요.

“최근에 시범 스마트팜을 미래농업지원센터 안에 만들었습니다. 원래 스마트팜 하나를 설치하는 데 5억원에서 10억원 가량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농민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규모입니다. 따라서 3중 비닐하우스로 지붕을 쓰고 필요에 따라 작물 재배 라인을 이동시킬 수 있는 ‘이동식 고설재배’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농민들이 양액 재배 시 양액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도록 재활용 시스템도 구축했구요. 이 스마트팜은 미래농업지원센터가 부지를 제공하고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설비를 지원하고, 발명가이자 딸기 명인인 한민우 씨와 하나로팜(스마트팜 솔루션 전문기업)이 참여한 결과물입니다. 이동식 고설재배 시설은 한 라인당 350만원 정도의 원가가 투입되지만, 재배 시 1년에 400만원 가량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양액 재활용 시설은 약 400만원이 투입되어야 하구요.”

비교적 IT 사용 비율이 낮은 초기 모형의 스마트팜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농민들이 처음부터 많은 비용을 들여 스마트팜을 설치하는 것을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아요. 설비 고장에 따른 유지보수 서비스도 어려울뿐더러 제대로 수리를 해 줄 수 있는 전문가도 국내에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요. 농민들에게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기 전에 연습과 실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각종 센서 장착은 최소화하고,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계적 요소를 도입해 비닐하우스형 스마트팜을 만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첨단 농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규제, 판로, 기술, 규제를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거대 농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영농인들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과제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판로입니다. 첨단 농업으로 대량의 농산물을 수확하더라도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농협이 제일 많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전국에 유통망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농협이 수익만을 지향하는 조직이 아니라 공공적인 사명을 띄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 사업은 어떻습니까.

“농협은행이 ‘농부의 마음’ 통장이라는 적금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체크카드 결제, 신용카드 결제를 통해 쌓인 실적이 월평균 15만원 이상일 때 금융 수수료를 면제해 주고,적금 가입자에게 최고 0.4%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외에 수요자 맞춤형 원스톱 종합컨설팅, 크라우드펀딩 같은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창억떡, 홍매실 같은 것은 홈쇼핑 론칭을 통해 판로를 지원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198개 농가에 480여개 제품(29억 원 규모)의 판로 지원 사업을 했습니다. 강소농을 길러내기 위한 디자인 컨설팅도 하고 있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요.

“나의 사랑 고향 장터같이 농민과 대중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교육과정에 와서 농협을 향한 애정 어린 비판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가급적 많이 들어주고, 조직 성과를 올리는 방향으로 적극 반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농협의 가장 큰 정체성 중 하나가 농민과 국민을 위한 봉사입니다. 대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가능한 비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