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대출금이 부동산업에 쏠리고 있다. 지난 1분기 대비 2분기 산업계 대출금액 증가율은 부동산업 대출 증가율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는 부동산 투자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은 탓도 있지만 시중은행들이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 대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4일 발표한 ‘2017년 2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 분석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부동산업 대출잔액은 전분기보다 6조8000억원(3.9%) 늘어난 182조9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산업계 대출은 14조3000억원(1.4%) 증가한 1016조원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2분기 부동산업 대출 잔액 증가분인 6조8000억원은 한국은행이 통계를 발표한 지난 2008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부동산업 대출이 급증하는 동안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는 한층 팍팍해지고 있다.

금융기관별로 보면 지난 2분기 시중은행들이 산업계에 대출한 잔액은 822조9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5조5000억원이 증가했는데, 제2금융권은 8조8000억원이 늘어난 193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시중은행들의 산업계 대출 증가액보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증가액이 3조3000억원이나 많았다. 지난 2분기 기업들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2금융권 이자율은 시중은행에 비해 적게는 서너 배에서 많게는 대여섯 배 높다. 한국은행도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위험 관리를 강화하면서 기업이 제2금융권을 통해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은행이 산업계 대출을 줄인다는 것은 기업 자금 사정의 악화를 의미한다. 은행 대출이 담보비중을 높이면서 전당포식 경영을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이 바뀌지 않고 있다.

기업에 대한 대출을 들여다봐도 은행의 전당포식 경영은 여전하다. 산업계 대출 총액 가운데 시설자금 비중은 40.8%에 달해 압도적이다. 시설자금은 기업의 공장부지나 건물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스타트업기업이 시중은행을 통해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받는 다는 것은 아직도 하늘의 별 따기다.

 

스타트업에게 여전히 높은 은행 문턱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직장인들에겐 다니는 회사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깨지면서 ‘어쩌다 사장’이 된 창업자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무역협회 등의 통계를 보면 중국이나 OECD 국가에 비해 국내 창업자 수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처음 부딪히는 장벽은 자본이지만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국가적으로는 국내 은행의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한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말 그대로 투자은행이 되려면 기업의 사업성에 대한 다양한 분석기법과 예측력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IB들은 담보 위주 대출상품에 수익을 의존하지 않는다. 면밀한 사업성 분석을 통해 미래에 대한 투자로 이자장사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확보한다.

국내은행은 달라져야 한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을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악성 부동산 대출을 남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연유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제 은행은 수익 모델 개발을 위해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를 접목한 다양한 첨단 기법을 동원하고 담보대출에 의존한 수익구조를 바꿔야 할 때 아닐까. 정부 눈치만 보며 대출 문턱만 높이는 전략으로 미래를 담보해낼 수는 없다.

이런 시점에 정부는 감사원 출신 비금융권 인사를 금융감독원장에 앉히려 하고 있다. 정부가 금융권을 더욱 혹독하게 옥죄겠다는 선언 정도로 읽힌다. 지금 금융컨트롤타워에 필요한 것은 전문성과 미래지향성이다. 비금융권 인사가 나설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금융감독원도 더 이상 은행을 감독의 대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육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금융권 경쟁력은 감독강화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감독만 강화할 경우 결과는 뻔하다. 안전한 대출과 그 이자에만 의존한 은행의 수익구조가 조금도 고쳐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