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고 택시를 잡으며, 모바일로 은행업무를 보고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수준까지 왔다. 최첨단 기술의 발전은 온디맨드의 방식으로 우리 삶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으며, 모든 것의 중심은 기술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ICT 기술의 등장으로 세상은 분명 편리하고 풍족해지고 있지만, 그 중심에서 장애인들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자는 '장애인까지 신경쓰며 어떻게 ICT 기술 발전을 끌고가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모든 기술이 인간과 역사의 진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아둔한 편견일 뿐이다.

당장 인류애적인 감성적 접근을 배제해도 현재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고 온디맨드 플랫폼 사업자가 괴물로 성장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고민은 기술의 발전과 이에 도태되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ICT 기술 접근권 제한은 근원적 공포가 최초로 발현되는 지점이며, 이는 마치 곰팡이처럼 비 장애인들로 번질 수 있다.

▲ 한 눈에 보는 2016 장애인통계. 출처=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장애인 ICT 기술 접근을 위한 노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편찬한 '한 눈에 보는 2016 장애인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장애인 수는 약 250만명에 달한다. 지체 장애인이 51.5%로 과반을 넘기고 있으며 청각 장애인 10.8%, 시각 장애인 10.2%, 뇌병변 장애인 10.1% 등이다. 연령으로 보면 전체 장애인 기준으로 볼 때 21.6%가 60대에 분포되어 있고 50대가 21.0%, 70대가 21.4%, 30대가 12.5%다. 고령과 장애인 수가 주로 겹치지만 10대 장애인의 수도 많아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07년 10대 장애인은 6만명 수준이지만 2015년에는 6만5000명 수준이다.

장애인들의 경제활동은 2015년 기준 37.7%에 불과해 비 장애인 63.3%의 절반이 불과하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기술의 발전을 체감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비율이 37.7%에 제한되었다는 것은, 결국 장애인의 미래 ICT 접근권도 크게 제한되어 있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은 1998년 12월9일 대한민국 장애인 인권선언을 통해 "장애인들은 사회의 여러가지 편견과 차별대우, 장애인에 대한 법적 보호의 미흡 등 그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엄한 인간"이라고 정의한 나라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 ICT 기술은, 그리고 미래진화를 위한 고민의 일부는 장애인을 향해있기도 하다.

터키의 스타트업이 만든 TEK휠체어가 눈길을 끈다. 바퀴가 달린 일반적인 휠체와와 달리 TEK휠체어는 모양부터 의자처럼 생기지 않았다. 조이스틱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지만 몸을 일으키거나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몸은 그네와 같은 안장으로 고정시키며 '앉아 있다'는 전제로 비 장애인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 TEK휠체어. 출처=캡처

미국 보쉬는 중증장애인 근로자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돕는 아파스(APAS)를 공개했다.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보조하는 로봇 기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다양한 관절로 중증장애인의 컨베이어 벨트 작어 등을 지원한다. 물론 아파스는 중증장애인만을 위한 로봇은 아니지만 활용도가 넓다는 점에서 장애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 보쉬의 아파스. 출처=보쉬

뇌의 전기신호와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어 시각장애인의 생각을 일상생활에 풀어내는 로봇손도 있다. 독일 튀빙겐대학병원 수르조 소카다 박사 연구팀이 개발했으며 신체에 전극을 연결할 필요가 없이 모자 형태로 사용하는 방식이라 실용성이 크다는 평가다. 척수장애를 앓는 이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한 발명가가 만든 생체공학 보조기는 신체마비 환자를 뛰게 만들기도 한다. 상체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양다리에 걸친 420그램 정도의 금속제 보조기를 움직이는 구조다. 이를 활용하면 휠체어에 앉아야 하는 장애인들도 걸을 수 있다. 지난 2012년 이 기기를 장착한 영국의 하반신 장애인이 마라톤 경기에 나서 완주에 성공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의미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SK(주) C&C는 ICT 장애인 교육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의미있는 사례를 보여줘 눈길을 끈다. 씨앗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청년 장애인을 위한 양질의 ICT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SK(주) C&C와 한국장애인공단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이 협력했다는 설명이다. ICT 전문가와 장애인들을 연결해 멘토와 멘티 체제를 갖추고 개발언어인 자바, 데이터베이스 설계 등 실습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수료식이 열린 가운데 수료생 23명 중 14명은 노틸러스 효성과 그라비티 등 10개 회사에 취업하거나 인턴십 참여가 결정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종화씨(가명,지체5급)는 "씨앗 프로그램의 자바 교육을 통해 취업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우수한 현장 중심의 전문 교육 과정에 힘이어 프로젝트 현장 개발자로 일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원만하게 만들어 주는 솔루션도 있다. 전주시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동아대학교, 과제수행업체인 휴먼미디어테크가 공동으로 선보인 청각 장애인 전용 웨어러블이 그 주인공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웨어러블에 신호를 보내 긴급상황을 알리거나 대화 시 텍스트로 비 장애인들과의 소통을 돕는 기술이다.

휴먼케어는 비콘 기술을 활용해 시각 장애인들의 음성 보도 내비게이션을 개발하기도 했다. 음성으로 보도안내를 지원해 시각 장애인들이 외부도움이 없어도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제품이다.

▲ 릴루미노 구동. 출처=삼성전자

따뜻함으로 그치면 곤란하다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윤택해지고 있으나, 장애인들은 여전히 진보의 사각지대에 갇혀있는 분위기다. 다만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비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고민이 이어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ICT 기술의 발전을 장애인들에게 나누는 따뜻한 행보'가 과연 옳을까? 이런 전제가 맞을까? 이러한 패러다임은 베푸는 것. 즉 시혜(施惠)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장애인 ICT 기술 접근법은 단순히 베푸는 것으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너의 정상인 상태가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장애는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는 자사의 C랩 과제 중 하나인 릴루미노 공개 시연행사를 열었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2012년부터 도입한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며 지금까지 총 180개 과제를 수행했고, 75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가능하다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스타트업 스핀오프를 시키는 것이 목표다.

릴루미노는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시각 장애인들이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기어VR과 연동하는 솔루션이다. 기어 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주며 1000만원을 호가하는 기존 시각 장애인 보조기기에 필적할만한 기능을 자랑한다.

당시 시연회에는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본인도 시각 장애인인 그는 릴루미노의 성능을 직접 체험한 경험담을 알려주며 당시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기술이나 솔루션을 개발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고마워도 선뜻 내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 출처=삼성전자

무슨뜻일까. 그는 "찾아오는 분들은 자신들에게 맞춰진 기술, 솔루션을 보여주며 여기에 적응하라고 한다. 잔치상을 차려주고 한 번 먹업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시각 장애인들도 원하는 것이 있고, 원하는 방식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너무 고맙지만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고 본의아니게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릴루미노는 달랐다고 한다. 김 교사는 "릴루미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물었고 공부했다"며 "많은 시각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ICT 기술의 발전을 말하며 장애인들을 함께가는 동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혜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릴루미노는 습관적인 접근이 아니라 철저하게 시각 장애인 자체에 집중했고, 현 상황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C랩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하게 '착한기술'에 대한 찬사를 넘어 우리 모두가 곰곰히 생각해야할 지점이다.

결국 생각의 전환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오세정, 김경진, 신용현 국회의원실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와 국민의당 국민정책연구원, 국회 미래 일자리와 교육 포럼이 공동 주관했던 ‘장애인 고령자 정보접근권 보장 토론회’에서 나온 이병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장애인을 비롯한 정보접근취약계층은 4차 산업혁명의 혜택은 고사하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디지털 시대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며 "이와 관련된 정책적 시행은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