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문화를 분류하는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영토문화를 분류할 때, 매장(埋葬)문화는 껴묻기 되어있는 유물은 유형문화인 동시에 용기문화이며, 장례를 치르는 예식이나 매장방법 등은 규범문화이자 관념문화로 무형문화다. 따라서 매장문화는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영토문화라고 할 수 있다.

지명(地名)문화는 지명의 의미와 명명한 집단의해서 영토권자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적(地籍)문화는 땅의 호적인 지적이 어떻게 변했느냐 하는 것이 그 영토의 변천사를 말해주기 때문에 영토권자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민속문화와 지도문화 등등 영토에 뿌리심고 있는 문화들은 모두 중요하지만, 정복자가 일시적으로나 혹은 강압적으로 정착시킨 문화는 영토문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적인 종축과 문화가 분포된 횡축에 의해서 보편적인 문화라고 판단되는 문화를 영토문화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문화가 문화주권자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영토문화의 분류에 의거해 만주와 대마도의 영토문화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만주에서 대마도에 이르는 대표적인 매장문화는 고인돌이며 껴묻기 된 유물로는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의 무덤 양식은 상식 석관묘(혹은 목관묘)로 서쪽 요하에서 요동지방을 거쳐 남으로는 한반도 전역으로 남해안의 제주도와 대마도까지 분포한다.

비파형 단검은 형태가 비파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지만 날이 비파처럼 생겼다고 모두 비파형 단검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비파형 단검이란 날과 자루를 따로 만들어서 조립하게 되어있는 단검으로, 북쪽은 송화강 유역으로부터 남쪽은 한반도와 대마도까지, 서쪽은 내몽골과의 경계선 부근으로부터 동쪽은 목단강 상류 유역까지, 서남쪽은 소릉하 서쪽 즉 난하 유역까지 분포한다. 날과 자루가 붙어있는 단검은 비파형 단검에 포함시킬 수 없고, 그것들은 요서지방에서만 출토되었으며 요동 및 한반도에서는 나온 예가 없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중국은 물론 일본의 학자들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중국은 만주에서 발굴되는 고분에 의한 유물들이 한반도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고구려를 자신들의 변방국가 중 하나였다는 억지를 부림으로써 만주와 대한민국의 연결고리를 끊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되는 지적문화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만주가 한족이 중심이 된 중국의 생활터전이 되어 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한편 대마도에서 발굴된 고분은 총 164기로 고분의 형태를 파악할 수 없는 20기를 제외한 144기 중 일본의 전통 고분인 옹관묘는 1기뿐이고, 토광묘가 1기 있으며 나머지 142기는 모두가 석관묘다. 비파형 동검 역시 껴묻기 된 것이 발굴되는데 그것은 만주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양식과 동일한 것이다. 매장문화에 의한 영토문화는 만주에서 대마도까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본학자들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확증인 것이다.

대마도의 매장문화가 일본의 다른 곳에서 발굴되는 매장문화와 비교할 때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대마도에서 불과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일본의 이키섬(壱岐島)에서 발굴되는 고분조차 주로 옹관묘이며 석관묘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상한 현상이라고 일본의 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이유를 대마도가 조선과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며, 대마도의 약 90%가 돌로 형성된 산으로 돌이 많아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얼버무릴 뿐이다.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선조들에 의해서 개척되고 문화를 꽃피운 곳임을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