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들을 살리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챙기는 친환경-유기농 직거래 운동이 직격탄을 맞았다. 21일 한살림 생협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고 등급의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경북 영천과 경산의 친환경 농가 2곳에서 공급된 계란으로, 7500원(10개)짜리 최고등급 ‘재래식 유정란’이었다. 한살림은 밀집사육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기른 닭이 생산한 계란만 판매한다.‘믿고 먹은 한살림이 왜 내 뒤통수를 치냐’며 분개한 강남 아줌마들이 국산 친환경 농축산물에서 돌아서서 외국산 유기농으로 관심을 돌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살림은 소비자들이 가장 믿을만한 생협 브랜드로 통했다. 생산자들과 소비자 간의 직접 연대를 꾀하는 ‘농업 민주화’의 원동력으로 알려 졌다. 70~80년대부터 화학농법으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식단을 마련할 수 없다는 자각이 한살림 조합의 창립으로 이끌었다. 일본 소설가 아리요시 사와코의 ‘복합 오염’,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같은 책들이 한살림 운동의 영향력을 강화시켜 준 친환경 텍스트들이다. 철학과 생산 능력으로 무장한 한살림은 설립 5년 만에 전국단위의 조합으로 성장했다. 90년대부터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한살림은 폐식용유 재활용 가루비누 개발, 흙살림 연구 모임 창립 등을 통해 친환경 농산물뿐만 아니라 생태 운동 전반으로 영역을 넓혀 가며 청정함의 대명사로 통해 왔다.

그런 한살림에서 가장 친환경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육된 닭의 계란이 나왔다는 사실은 소비자들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하다. 이것은 농피아들의 허술하게 친환경 인증을 내 준 것과는 또 다른 사태다. 생산자 운동에서 가장 핵심은 유통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정확성이다. 전문적이지 못한 유통 체계는 대기업 위주의 농축산물 생산 체제를 극복하는 데 커다란 저해 요인이 된다. ‘역시 큰 회사가 생산한 물건이 깨끗하고 안심할 만 하다’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박사가 SNS에 "아이쿱 생협으로부터 받았다"고 언급한 문자메시지(출처=정은정 박사)

그 와중에 또 다른 생협이 “지금 기사에서 언급되는 생협은 우리 조직이 아니니 안심하셔도 된다”는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보냈다. 아이쿱 생협이 '한살림 생협' 상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벌인 일이다. 사실 조직 경영 관점에서 보면 아이쿱 생협의 처신은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경쟁적 행동으로서 당연한 처사다. 충성 고객들을 안심시킨다는 명분도 작동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브랜드의 불행을 활용해 득을 보려는 전술적인 면모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다 같이 농촌을 살리자’고 주장해 온 친환경 운동가들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기회로 이용하는 모습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한살림 ‘살충제 계란’의 주된 원인은 토양에서 검출된 농약 성분이었다. 닭에 직접 뿌리지 않더라도 닭이 살아가는 흙바닥에 남은 DDT가 오염의 주범이었던 것이다.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 농촌 운동가는 “다 살자고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마지막 남은 친환경의 보루인 생협에서 오염 물질 검출 사태가 빚어진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살림과 같은 생협은 강남 아줌마들만 주 구매자가 아니다. 건강을 염려하는 중산층, 서민들도 애용하는 ‘깨끗한 식품의 보루’다. 이 기대를 절대로 배신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공급망 관리, 품질관리에 대한 투자와 대기업 못지 않은 빅 데이터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가뜩이나 농피아의 ‘가짜 친환경 인증’ 때문에 화 많은 소비자들에게 생협마저 실망을 줘서는 안 되지 않은가. 중국에서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중산층 고객들을 중심으로 외국산 유기농 식품 소비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허마셴셩'이나 '이궈셴셩'과 같은 신선식품 가게들이 편의점처럼 각 지역에 확산되고 있다. 1 리터 짜리 프랑스산 생수, 10 킬로그램짜리 일본산 쌀을 사 먹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썩 멀지 않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