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116.7×91㎝ acrylic on canvas, 1996

 

그의 작품 속 절망에는 언제나 날개가 존재했다. 이는 그의 적업의 변천과정, 즉 소외된 도시적 삶의 묘사로부터 내면의 서정적 풍경으로 자리를 옮아가는 그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그의 작품들이 그토록 차가운 테크닉과 우울한 소재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삶에 대한 따뜻함을 던져버릴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타고난 서정성의 표출이다. 아무리 차가운 표현을 외도하더라도 이석주(LEE SUK JU)작가의 작품 속에는 어찌할 수 없는 천성, 그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 천성적 따스함 때문인가, 이석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든 상상의 현실이든 그는 결코 현실을 냉정하게 사물화 시킬 수 없는 듯하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미 그가 아니다.

 

▲ 영광의 이유, 116.7×91㎝ oil on canvas, 1997

 

그는 그토록 냉정한 아웃사이더로 살고 싶었던 곳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90년대로 갈수록 더욱 많아진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세계를 통제하고 해설하려하는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학소녀들의 속삭임처럼 사소하고 낭만적인 일상적 삶의 조그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환상 속으로 들어간다. 90년대의 <일상>에는 현실의 사실적 풍경은 사라지고 내면의 풍경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체적 현실이 사라지고 파편화 현실들이 극사실적으로 캔버스 위에 재조립되면서 일어나는 환상의 여행, 그것이다. 90년대 들면서 이석주(李石柱)작가의 작업은 기억속의 파편들로서 일상을 재정립하려 한다.

 

▲ 서정적 풍경, 116.7×91㎝ acrylic on canvas, 1999

 

하얀 천으로 덮인 의자, 우수에 젖은 백마, 아득한 곳으로부터 달려가는 기차, 그림자를 드리운 시계, 전기 콘센트 같은 일상의 사물 그리고 그 위를 부유하는 마른 포플러 잎들, 그런 파편들은 생을 관통하는 우주적 원리가 되기도 하고 단순한 일상 사물의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그의 ‘도시적 풍경에서 전원적 풍경’으로의 전환은 내면을 투시하는 성숙된 시각과 넉넉해진 정서를 반영한다.

그만큼 그의 일상들은 서정성과 메타포가 강화되었다. 한편의 서정시를 보는듯한 느낌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아무리 미술이 미술이기 위해 이야기를 배제해야한다고 강변을 해도 미술 속에도 담겨질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로 인하여 더욱 미술다운 미술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술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과 그에 대해 느끼는 다양한 방식을 그 존재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글=김연희/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일상, 387×259㎝ oil on canva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