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보수정부가 쏟아낸 부동산 시장 부양정책들과 예상보다 길어진 저금리 기조가 국내 아파트 분양시장을 과열시켰다. 치솟는 집값과 수백대 일에 이르는 청약경쟁률을 보다 못한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 8.2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11.3대책’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 번 내놓은 대책들은 큰 틀에서 주택 공급 억제와 수요 억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투기꾼들이 부동산시장을 더 이상 교란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뜻이지만, 주택 실수요자들도 청약조건 강화와 금융 규제로 내 집 마련이 이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역 등 규제 지역에서 제외되더라도 중도금 대출 제한과 청약조건 강화 등이 적용되는 탓이다.

수도권의 아파트 실수요자들은 최근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서울 외에 가까운 신도시들이나 미분양으로 남아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숨은 ‘알짜 아파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란 서울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주택정보포털의 시·군·구별 미분양주택 현황에 따르면 6월 기준 서울시의 미분양 아파트는 고작 64가구다. 이 중 준공 후 미분양은 56가구다. 5월에는 119가구가 미분양이었지만 절반 정도인 55가구가 줄어든 것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종로구, 성동구, 성북구, 도봉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등 7곳에서 미분양이 생겼지만 숫자는 얼마 안 됐다. 지난해 6월 서울 시내 총 426가구의 미분양 물량도 거의 모두 제 주인을 찾았다.

올해 초만 해도 2014년 분양한 성동구 성수동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서울숲 트리마제’의 전체 688가구 중 80여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었다. 분양 당시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은 트리마제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약 3800만원 선이었다.

비싼 분양가에다 성수동이라는 단지 위치에 따른 저평가로 3년 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아파트는 5월 입주가 시작되면서 미분양을 털어내고 몸값을 올렸다. 입주가 시작되면서 웃돈이 최고 2억원가량 붙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체들에 따르면 분양 당시 인기가 높았던 작은 평형대의 물량뿐만 아니라 대형 평형도 모두 팔렸다. 6월 말 성동구에는 미분양 물량은 없다.

미분양 물량은 프리미엄이 붙지 않은 일명 ‘무피’ 가격이나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할인 판매되기도 한다. 올해 4월 현대산업개발이 강서구 화곡동에 지어 분양한 주상복합아파트 ‘그랜드아이파크’가 최초 분양가에서 최대 43%나 할인된 가격으로 선착순 특별분양을 한 것은 좋은 사례다.

공급면적 185㎡형과 224㎡형 등 대형 평형대가 소량 남았으나 3.3㎡당 130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에다 세대별 발코니 무료 확장, 시스템에어컨, 냉장고 등 옵션을 무상제공해 미분양을 해결했다. 2008년 입주자 모집 공고 당시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공급면적 3.3㎡당 평균 2020만~2300만원 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거저 줍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앞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지난 3월 은평뉴타운 내 전세계약이 만료돼 분양 전환되는 대형 평형 아파트 439가구를 최초 분양가보다 20% 싼 가격으로 분양해 완판시켰다. 은평뉴타운은 8.2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서울 전역에서 도시재생사업까지 중단되자 ‘뉴타운 프리미엄’으로 반사효과를 누리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많은 지역의 아파트는 신중하게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잇따른 부동산 규제로 매수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과거 분양한 대규모 입주 물량이 하반기부터 쏟아지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은 선구안을 발휘해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6월 말 기준으로 경기도 내 미분양 아파트는 1만1229가구다. 연말까지 경기도의 입주물량은 총 9만3810가구, 내년에는 16만000여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분양 예정 물량도 10만2626가구가 남았다.

경기도내에서 성남, 과천, 구리 등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전혀 없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용인(2521가구)에 이어 화성(1727가구), 평택(1565가구), 안성(1555가구) 등 4개 지역에 미분양 물량이 집중해 있다.

용인시는 개발 호재 없이 공급이 계속 이어진 바람에 경기도 내 최대 미분양 지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용인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지정 미분양관리지역이기도 하다. 용인시 처인구 J공인 관계자는 “최초 분양가의 절반만 있어도 즉시 입주가 가능하다고 홍보해도 미분양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용인 지역에는 대형 평형이 많이 지어졌지만 수요자들의 관심이 없다. 청약 요건이 안 되거나 실수요를 목적으로 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추후 상승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에서 대표적인 미분양 적체지역으로 꼽힌 김포와 파주는 미분양을 털어냈다. 지난해 말 미분양 가구가 4285가구나 됐던 파주시는 6월 말 현재 16가구만을 남기고 모두 소진했다. 한강신도시의 미분양 적체로 몸살을 앓은 김포시도 2708가구의 미분양 물량을 모두 털어냈다.

김포와 파주가 미분양 물량을 털어낸 근본 원인은 서울 접근성이 떨어져 분양 아파트로 관심을 받지 못한 지역에 교통 호재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년)에 GTX·3호선 파주 연장안이 확정되면서 파주 미분양 물량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김포시에서도 2018년 김포도시철도가 개통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