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시장에 다양성이 없다는 비판과 함께 최근 프랑스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프랑스 내 12개 이상 스크린을 보유한 영화관은 한 영화를 2개 스크린 이상 상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영화관이 정부와의 협약을 맺고 이렇게 상영 스케줄을 짤 수 있다. 다만 영화관이 위와 같은 협약을 정부와 맺을 경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영화관에서 연 30% 이상 좌석점유율이 나오지 않을 경우 부족한 만큼 돌려받는다. 이는 프랑스 정부의 영화산업 지원 정책에 따른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영화산업에 매년 8000억원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한국과는 달리 극장 지원금으로도 30% 이상의 금액을 할애한다. 

미국이 시장 기능에 의해 자율적인 다양성 확보가 이루어졌다면 프랑스는 공적 지원을 통해 다양성이 보전된 국가다. 우선 프랑스의 영화역사 속에서 살펴 보면 이런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1985년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상업영화를 탄생시킨 이래 프랑스는 자연스럽게 영화의 산업적 성장이 이뤄졌다. 1900년대 초 이미 영화 기자재부터 제작과 판매, 배급, 상영까지 영화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최초의 영화대기업 ‘파테’가 탄생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계 1차 대전이 마무리된 이후 1910년~40년 사이 프랑스 영화시장은 할리우드의 독점시대가 열린다. 막강한 자금력과 시장지배력을 가진 할리우드 영화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시장을 잠식당하게 된 것이다. 1919년 프랑스 영화시장에서 미국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85%에 이를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랑스의 대형영화사인 고몽과 파테조차도 위험 부담이 큰 제작, 투자는 줄이고 배급과 상영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산업의 악순환이 지속되자 프랑스 내에서는 자국영화에 대한 보호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프랑스 정부는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공적 지원제도를 갖춰나가게 된다. 1948년 영화지원법에 의거해 영화산업진흥기금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CNC에서 운영하게 된다. TV방송사와 영화산업에서 나오는 수입 중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거둬 다양한 재분배를 시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시대가 열린다. ‘누벨바그’로 대표되는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영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프랑스 영화시장에 새로운 주제와 표현방식을 바탕으로 한 ‘작가주의’ 영화가 출현하면서 프랑스 영화 다양성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프랑스 내에도 TV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영화는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프랑스 영화시장에서 1982년 2억명에 이르던 연 관람객은 10년이 지난 1992년 1억2000만명까지 감소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또 다시 적극 개입에 나선다. 각종 규제와 보조금 지원을 통해 적극 자국영화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세계 무역 장벽이 낮아지는 가운데서도 문화에서만은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주장으로 미국 영화와 드라마로부터 자국 문화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율과 쿼터제를 도입했다. 제작과 상영 부문에서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신인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투자를 의무화하고, 예술극장에 대한 지원책도 강화했다. 이에 힘입어 프랑스 영화시장 관객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연 관람객이 2억명 선을 회복했다.

이런 전통만 놓고 보면 프랑스 영화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다양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와 자국영화 보호정책에 대해 다소 엇갈리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경쟁이라는 시장 메커니즘에서 작동되어야 하는데 규제와 보조금 지급이라는 보호 육성책으로 일관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영화산업의 자국영화 점유율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 프랑스의 자국영화 점유율은 30~40%대를 오가는 수준이다.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의 흥행으로 미국 영화 점유율이 매년 50% 이상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경쟁력 있는 프랑스 대작영화가 나오지 않으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시장을 독점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상업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의 골이 깊어지면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내에서조차 지금 작품성과 상관 없는 영화들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위기감이 존재한다. 영화 시장의 다양성 보존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몰라도, 독립영화 자체의 자생력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반성이 팽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