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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장기 채권 소각이 가계 부채 문제의 전부인가?
   
 

늘지 않는 소득으로 늘어나는 생계비를 감당하지 못해 빚을 빚으로 갚는 사람들, 30만~50만원이 필요해서 연 3000%가 넘는 이율을 감수하며 불법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들, 개인회생을 신청해서 법원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나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 사실상 파산상태이지만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야 면책 가능한 엄혹한 파산제도로 신청을 꺼리는 사람들. 모두 늘어나는 가계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모습들이다.

가계부채의 해결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 중 하나가 됐다.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잡지 못하면 생길 수 있는 사회, 경제적인 악영향이 실로 크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여러 분야와 관련되어 있다. 부동산, 금융, 조세, 도산법, 외환 정책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이나 장기, 소액 채권의 소각 정책은 사실 가계부채 문제 중에 아주 미미한 부분일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면한 문제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증가세에 있는 가계부채 문제에 비하면 시효 완성 채권의 소각 문제는 그 중대성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주류경제 진영은 잊을 만하면 이 정책에 대해 채무자의 ‘도덕적 문제’까지 들이대며 호들갑을 떤다. 이와 같은 소란스러움은 마치 장기 채권의 소각 정책이 가계부채 문제의 중심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불법 사채업자들로부터 고통받은 사람들의 문제는 도외시되어 있고 사법적 채무조정 절차인 도산제도는 여전히 기업 위주로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커가는 아이들, 급작스러운 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 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의 소득이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돈을 빌릴 곳이 없어 불법 사채 시장에 내몰리거나 법원으로부터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풀어야 할 숙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돈을 더 빌릴 것인지, 채무조정을 해야 할 것인지, 파산할 것인지, 아니면 복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혼란스러운 금융 소비자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는 제도가 장기 채권을 정리하는 문제보다 더 절실해 보인다.

대부분 다중 채권자들에 대해 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해준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10곳의 금융회사에 채무를 지고 있는 채무자가 이 중 몇 개의 채권이 정부 정책으로 혜택을 본들 나머지 채무가 역시 발목을 잡을 것이 뻔하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의 소각은 상환할 수 있는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환할 수 없는 채무를 소각하는 것이다. 연체된 지 최소 5년이 넘은 채권들이다.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경제활동이 제약된 이들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채무면제 정책이 진행형인 가계부채 문제의 직접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법정 최고이율을 낮추고 난립하는 불법 대부업자를 견제하며 미국과 일본의 선진적인 회생, 파산 제도를 조속히 입법화하거나 채무자 중심의 법원 실무를 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계 부채 문제의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시효 완성 채권과 장기, 소액 채권의 면제는 당면한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적인 대책이 아니다. 그래서 이 대책을 시행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이 대책이 가계부채의 본질적인 문제로 주목받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점점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내일 당장 카드대금과 대출금을 연체해야 할 상황이라면,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이 불법 사채 시장으로 가지 않을 새로운 대안이 있기를 바란다.

양인정 기자  |  lawyang@econovill.com  |  승인 2017.08.19  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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