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 인하를 놓고 정부와 통신사의 '강대강 대치'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9일 통신사로부터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대한 의견서를 접수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월1일 시행을 목표로 세부사항을 가다듬고 있으며 예정대로 16일 행정처분을 한다는 방침이다.

가계통신비 인하의 실질적인 방법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하다.  통신사들은 25% 약정할인율 인상을 두고 표면으로는 반발하고 있으나 내심 주판알을 튕기며 자기들에게 미칠 파급력을 계산하고 있다. 정부도 나름대로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업계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중용의 길을 찾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고통분담론이 탄력을 받고 있으며 '전선'은 통신업계를 넘어 ICT 플랫폼 생태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좁아진 전선, 각자의 주판알

문재인대통령의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은 애당초 기본료 폐지를 골자로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25% 약정할인율 인상으로 가닥이 잡혔다.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으로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 중 일부를 장기 프로젝트로 돌린 후 당장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안이 25% 약정할인율 인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 와이파이 확대 등이 있으나 이는 '메인 디시'가 아니다.

일각에서 단말기 완전 자급제 등의 주장이 국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으나 이는 기존 단말기 유통체계를 파괴해야 하는 등 부담이 크다. 알뜰폰 사업자와 골목상권 논란 등 민감한 이슈가 얽혀있기 때문에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는 기류가 선명하다.

나아가 요금인가제 폐지에 이은 등록제 전환은 독점적 통신업계 지형을 해체해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어서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 있다. 1안과 2안으로 나눠진 정책안이 지난달 21일 발표됐으나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이유에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통신3사 최고경영자(CEO) 연쇄 회동에서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대한 당위성을 적극 설명하고 통신3사의 의견을 수렴했다. 가계통신비 인하의 키워드가 장관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약정할인율로 좁혀진 결정적인 이유다.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정부가 적극 나설 수 있는 근거는 갖춰졌다는 평가다. 올해 2분기 SK텔레콤은 영업이익 4233억원, 매출 4조3456억원을 기록했으며 KT도 영업이익 4473억원, 매출 5조8425억원을 올렸다.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도 영업이익 2080억원, 매출 3조97억원을 올리며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다.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대해 정부가 강공모드를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이처럼 통신사 기초체력이 강해 가계통신비 인하에 따른 타격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희망섞인 분석도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3사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유영상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실적발표 당시 컨퍼런스콜을 통해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은 사업자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광석 KT 재무최고책임자도 "통신사의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투자를 비롯해 5G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드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혁주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도 "투자 및 기술개발 여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반발의 전제에는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전체 사업의 비전을 꺾을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현재 통신3사는 25% 약정할인율 인상이 예상대로 진행될 경우 집단소송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통신사 내부에 흐르는 기류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3사가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크게 반발하고 있으나 사실 정부와 끝판승부를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각 통신사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SK텔레콤은 업계 1위 사업자이기 때문에 25% 약정할인율 인상  타격이 상대적으로 커  적극적인 투사의 모습을 부각하고 있으나 그룹 전체로 보면 최태원 회장 이슈 등 정부와 얽힌 민감한 이슈가 너무 많다"면서 "최근 SK텔레콤을 중심으로 기존 유통 체계를 무너뜨리고  골목상권 논란과 민감한 이슈인 단말기 자급제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실제 행동 여부와 별개로 정부를 우회압박해 자기들이 몸을 빼려는 의도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강대강 대치를 주도하고 있으나 나름의 연막작전과 출구전략을 세웠다는 뜻이다.  SK텔레콤은 "정부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적절한 대처를 할 예정"이라는 말을 거듭할 뿐이다.  

KT도 지배구조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강대강 대치에 나서기는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KT는 "아직 KT 내부에서 소송전에 나선다는 명확한 방침이 선 것은 아니다"면서 "상황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LG유플러스는 표면적으로 이번 강대강 대치에서 가장 '아쉬울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이슈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LG유플러스는 이번 논란에서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3위 사업자 입장에서 강대강 정국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는다'는 행보라는 뜻이다. 이에 LG유플러스는 "우리가 이번 정국에서 가장 홀가분하게 대응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통신사들이 겉으로는 정부와 대치하면서도 수면하에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사업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당초  가계통신비 인하 논란이 불거졌을 무렵 25% 약정할인율 인상이 화두가 되자 업계를 중심으로 나온 '배임 시나리오'가 단서다.  기업이  정부 정책을 순순히 따라 영업이익에 손해가 발생하는 일을 받아들인다면 일종의 배임이 될 수 있어 업계 반발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역으로 통신사가 겉으로 반발해도 이면으로는 나름의 가능성을 타진해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극적인 타결 가능성?

정부와 통신 3사가 타결을 볼 가능성은 있다.  이미 정부와 통신사 사이에서 조율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먼저 고통분담론이다.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에 보폭을 맞춘다는 전제로 25% 약정할인율을 시행한다면, 그에 걸맞은 부담을 정부와 이해관계자들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유영상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컨퍼런스콜에서 "가계통신비 인하를 고민하겠지만 수익성 악화에 따른 정부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신광석 KT 재무최고책임자도 "정부도 역할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으며 이혁주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는 정부와 플랫폼 사업자도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정부 역시 '슬쩍' 여지를 열어두는 모양새다. 유영민 장관이 통신3사 CEO와 만났을 당시 25% 약정할인율 인상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도 정부와 업계의 정면충돌 소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제정안을 의결했다. 핵심은 기간통신사업자가 부가통신사업자 콘텐츠 제공 서비스 등에 일방으로 관여하거나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이다.

표면으로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통신사의 부가 사업자 개입 당위성에 무게를 실었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행동에 들어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용자 이익저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 행위 주체에 관한 사항과 전기통신서비스 시장의 진입장벽 등을 고려해 개입 여부를 고려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부당하게 개입할 수 없다. 다만 개입하려면 이런저런 조건을 판단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며, 이는 역으로 '조건을 고려한다면 개입할 수 있다'는 출구를 열어준 셈이다. 일각에서 방통위가 통신사에 제로레이팅 가능성을 선물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네이버 등 포털은 이제 대규모 사업자가 됐다고 판단되고 대규모 사업자로서 사회적 의무나 책임이 따른다고 본다"는 말을 한 대목과 통신3사의 고통분담론에 포털 사업자가 포함되는 장면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포털 사업자의 책임을 거론하며 고시 제정안을 발표한 것과 통신3사의 포털 사업자 가계통신비 고통분담론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에 부담이 지워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원론적인 원칙만 확인했다는 입장이며, 통신3사도 당장 이번 논란에 포털 사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여지는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가계통신비 인하 정국에서 포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이는 적용범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없고 민감한 일이라 나중의 이슈"라면서도 "논의할 가치는 있다고 본다"고 답한 것을 보면 그렇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사업자는 이에 대해 답변을 피하거나 "정해진 대응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진흙탕 싸움에 휘말릴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5G 주파수 할당대가와 전파사용료 인하로 정부가 고통을 분담하는 내용도 거론되고 있다. 주파수 경매 등을 통해 자원을 할당받는 통신사에게 그 부담을 줄여주며 일종의 준조세(주파수 할당비용)를 절감하게 만드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그동안 쓰임새에 비판을 받은 주파수 할당비용 등에 대한 족쇄가 될 수 있기에 정부가 나서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준조세를 절감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일종의 통신사 특혜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25% 약정할인율 인상을 신규 가입자에게만 적용하는 방안도 유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방안도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인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집단적인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기존 가입자 적용은 고객과 통신사 간 민간 계약이라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만 하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지만, 신규 가입자에게만 25% 약정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은 실질적인 체감효과가 낮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어차피 정부는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있어 신규 가입자 적용밖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5만원대 요금제 기준 2500원 할인이 들어가는 셈이고, 1300만명 기존 가입자는 혜택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사실이라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기본료 폐지가 사실상 물건너 간 상태에서 정부가 야심차게 주장한 25% 약정할인율 인상도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이다.

윤 국장은 "정부와 통신사가 가계통신비 인하를 두고 감정적인 소모전을 벌이는 것 같다"면서 "정부가 원만한 의견교류도 없이 무리하게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장한 것에 대해 통신사들의 감정 반발이 있으며, 25% 약정할인율 인상이 내년에는 30%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통신사는 각자 주판알이나 튕기며 손익계산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결국 양쪽 의견이 처음부터 원만하게 소통되지 않았으며, 정부는 밀어붙이기 정책만 고수했고 통신사는 더욱 반발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경현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소장은 "가계통신비 인하의 핵심은 통신사가 요금 인하의 여력이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확실한 데이터로써 통신사의 가계통신비 인하 당위성을 설명하고 통신사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