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뱅가드가 미국의 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이 올해 2%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은 이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임금인상률이 낮아 중앙은행이 정한 물가상승률 목표치(2%)를 밑돌고 있는 현실과 매우 거리가 있는 탓이다.

두 자산운용사의 이런 주장은 투자 원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고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물가가 오르더라도 채권의 실질가치를 보전해주는 인플레이션 헤지 상품인 물가연동채권(TIP)을 매수하라는 권고로 읽힌다.

블랙록 뱅가드 몇 달 내 물가 2%대 진입, TIP 매수 늘릴터

6일(현지시간) 미국의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뱅가드의 선임펀드 매니저인 젬마 라이트 카스파리우스는 이날 “근원 물가의 기본 흐름은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뱅가드는 운용하는 자산이 4조40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2위의 자산운용사이다.

지난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1.6%로 중앙은행 목표치 2%를 크게 미달했다. 연방준비제도( Fed)가 통화정책 결정 시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달에 비해서는 같았으나 1년 전에 비해서는 겨우 1.4% 증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Fed가 금리를 올리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 미국 CPI추이.출처=블룸버그통신

반면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부문 신규고용 창출이 20만9000개로 예상(18만개)을 웃돌고 실업률이 16년 만의 최저치인 4.3%로 떨어지는 등 고용시장 상황이 좋아 결국 임금이 오르고, 소비가 늘면서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Fed가 금융위기 당시 사들인 채권을 줄이려는 것(자산축소)은 적어도 내년 3월까지는 금리를 일정수준 유지하겠다는 뜻이며 이는 물가상승률이 일단 2% 도달하면 그 수준을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통상 통화량 증가로 물가상승 기대심리가 커지면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채권수요가 감소해 채권금리가 상승(채권가격 하락)한다. 이는 자산운용사에게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을 입에 올린 것은 바로 TIP에 있다. TIP는 물가가 오르면 수익을 내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젬마 라이트 카스파리우스는 앞으로 몇 달간 TIP포지션을 늘리겠다고 했다.

운용 자산 5조7000억달러로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마틴 헤가티 펀드매니저도 물가상승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동의한다. 그는 미국 TIP가 영국과 유럽의 TIP에 비해 싸다면서 “채권트레이더들이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본다면 실수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TIPS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다”고 평가했다.

헤가티 매니저의 발언에 동조하는 투자자들도 생기고 있으며 6월과 7월에 12억달러가 TIP에 유입된 것만 봐도 그렇다.

핌코 내년까지 물가상승률 2% 미만, 그래도 TIP 사야

블랙록과 뱅가드의 이런 예상은 아직도 목표치에 못미치고 있는 물가상승률을 예의주시하는 Fed나 자산운용사 핌코와는 차이가 있다.

실업률이 낮고 구인이 쉽지 않지만 미국 기업들은 임금을 빠르게 올리지는 않아 물가상승률이 낮은 점 탓에 Fed는 기준금리 인상을 망설이고 있다. 7월 시간당 임금은 26.36달러로 전달에 비해 0.3% 올랐다. 1년 전에 비하면 2.5%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6월과 같았다.

▲ 미국 노동시장 현황. 출처=미국노동통계국

경제가 완전 고용상태일 경우 임금상승률은 통상 3~4%인데 미국은 현재 그렇지 못하며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의 상승률만을 보이고 있는 셈이 된다. 마켓워치는 낮은 노동생산성, 글로벌 경쟁, 대침체기 이후 미국인들의 전직기피 현상을 임금 상승 둔화 요인으로 꼽았다.

운용자산 규모가 1조6000억달러인 핌코의 펀드 매니저인 제러미 바넷은 “미국 경제는 더 건실하며 하반기에는 결국 인플레이션은 더 높아질 것”리면서도 뱅가드나 블랙록과는 달리, 그는 물가상승률이 내년까지는 2%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그 역시 TIP가 저평가됐다는데 무게를 뒀다.

물가를 지켜보겠다는 자산운용사도 있다. 운용자산 8580억달러의 인베스코의 선임 매크로 전략가인 제임스 옹은 “물가에 관한 채권시장의 컨센선스가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올인하기 전에 관망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구인경쟁을 벌이면서 임금상승이 재개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물가압력이 곧바로 증가할 것임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