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에 능한, 자타공인 ‘일당백’ 직원이다. A씨는 거래처의 전화를 받으면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순간에도 상부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이 컴퓨터 하단 팝업창으로 끊임없이 뜬다. ‘A대리, 저번에 말했던 건은 어떻게 됐나.’ 답변이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A씨는 빠르게 팝업창을 클릭해 상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러던 중, A씨는 실수를 했다. 거래처에게 해야 할 답변을 상사에게, 상사에게 해야 할 답변을 거래처에게 한 것. 최근 들어 A씨는 이 같은 실수가 늘었다. 멀티태스킹은 A씨의 특기였는데 실수가 늘자 자신감도 떨어지고 일을 수습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들어 A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멀티人'은 바쁜 현대 사회에서 능력자로 인정받는다. '멀티태스킹'은 정말 일반적인 인식대로 효율적일까.사진=이미지투데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에 당황하지 않고 마치 몸이 열개인 듯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직원을 인정하고 또 이를 자주 요구한다.

해외 유명 학술지에 발표된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을 자주하는 사람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플로스원(PLoS One)지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멀티태스킹이 끝내 뇌의 구조까지 바꿀 수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멀티태스킹을 자주하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힘들어 했고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 고난이도일수록 작업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멀티태스킹을 여러 번 한다고 해서 이에 맞게 뇌가 단련이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멀티인’ 요구하는 사회, 문제가 되는 ‘멀티태스킹’ 따로 있다

멀티태스킹의 전부가 문제는 아니다. 신윤미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문제가 되는 멀티태스킹은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는 일상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샤워를 하거나 공부를 할 때가 있는데 이 같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멀티태스킹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문제가 되는 멀티태스킹은 주로 고난이도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학업 수행에만 집중해야 할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때, 직장인이 일이 밀리는 탓에 동시에 고난이도의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는 안 될까”…자괴감 느끼는 직장인들

컴퓨터도 각기 다른 일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명령하면 과부하가 걸린다. 사람은 이와 더불어 실수도 한다. 실수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자괴감이다. 멀티가 되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멀티태스킹을 하는 데 나만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능력부족을 탓하게 된다.

한 중소기업의 영업팀에 다니던 28살 직장인 C씨는 최근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뒀다. 최소 5년은 다니리라 다짐했던 곳이다. 주변 동료와도 사이가 좋았고 받는 월급도 나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1년 뒤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다양한 업무를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영업팀에 발령받은 C씨가 해야 했던 업무는 다양했다. 직접 발로 뛰는 거래처 방문 영업, 자사의 제품을 만드는 공장 관계자와의 조율, 상부에 제출해야 할 보고서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나아가 바로 위 상사가 주는 자잘한 일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일하기 전날 미리미리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놔도 다음날 상사가 던져주는 일이 우선이 됐다. 처음엔 다양한 일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일이 많은 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는 점점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졌다.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한 탓에 실수도 이어졌다. 상사는 ‘그것도 빨리 못 끝내냐’며 C씨를 질책했다. 결국 C씨는 회사에 취직한 지 1년 5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신인 '가네샤'는 코끼리의 머리에 네 개의 손을 가졌다. 인간도 가네샤처럼 각기 다른 일을 동시에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사진=이미지투데이

무엇이 우리를 멀티형 인간으로 몰아가나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집중해서 처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제일 이상적인 루틴이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우리를 멀티태스킹형 인간으로 변할 수밖에 없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 직장인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일이 많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이 최고의 자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은 전 세계에서 일을 오래하기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지난해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는 24시간인데 근무 시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없다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 인식도 문제다. 일반인들은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해진 근무시간 내에 여러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멀티태스킹, 인간 뇌의 한계 넘어 ‘비효율적’

하는 사람은 괴롭더라도 멀티태스킹이 결과적으로 능률을 높인다면 감안할 만하다. 과연 멀티태스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효율적일까.

멀티태스킹은 업무의 우선순위에 따라 정해진 시간을 쪼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멀티태스킹은 일의 우선순위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것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을 자의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앞에 놓인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을 한다. 가끔 우선순위가 제일 높은 일과 낮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비효율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멀티태스킹은 일반적인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선다. 아주 단순한 전화번호조차도 듣고 난 뒤 2초면 잊는 게 보통이다.

신윤미 교수는 “같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며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 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연구를 보면 멀티태스킹이 오히려 업무 시간을 늘리고 뇌의 운용도 능률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데 이처럼 고난이도의 일을 동시에 집중해서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인간의 뇌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점이다”고 덧붙였다.

불안정한 ‘정서’가 단기집중력 떨어뜨려

멀티태스킹은 개인의 성취동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정해놓은 우선순위에 따라서 일을 진행할 수 없을 때 개인은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퇴사한 C씨의 사례가 이와 같다.

신윤미 교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굉장히 집중을 요하는 일인데 또 다른 일이 새롭게 들어온다면 새로운 일 때문에 짜놨던 스케줄을 새로 재조직해야 한다”며 “이것이 일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 같은 상황에 처해진 개인도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신윤미 교수에 따르면 단기집중력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서상태’다. 개인이 자신감에 차 있는지 불안한지에 따라서 집중력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일의 결과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것.

그는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에 대한 걱정을 한다면 온전한 몰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두 가지 일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지적했다.

▲ 공동체가 공유하는 커다란 목표의식과 직장 상부와 하부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멀티태스킹으로 인한 개인의 스트레스를 덜 수 있다.사진=이미지투데이

공동체 사이 일관적인 ‘목표의식·소통’ 중요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다. 직장과 같은 집단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하고 직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에 가깝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멀티태스킹은 개인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도저히 처리하기 힘든 일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터놓고 다 같이 해결책을 모색하면 된다. 시간이 모자라거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단순한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몰아가는 집단의 분위기가 악순환을 불러온다.

더불어 지도자는 멀티태스킹을 하는 개인의 스트레스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공동체의 일관적인 목표의식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좋다.

신윤미 교수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도 공통적인 부분이 보일 것”이라며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게 주어진 일의 절대적 양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직장 상부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이것이 왜 필요하고, 지금 어떤 것을 다뤄야하는지 설명해주고 소통을 통해 직장 내 분위기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