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이미지투데이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소비 트렌트 중심에서 떠날 줄 모르고 있다. 유통업계 전반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제품들이 괄목할 만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여름 성수기를 맞은 맥주 역시 ‘가성비’ 키워드를 입은 ‘발포주’가 대세로 떠올랐다.  값이 싼 수입 맥주에 국산 맥주가 기를 펴지 못한 상황에서, 발포주를 계기로 국산 맥주가 다시 주목받을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발포주는 맥주 맛을 내지만 사실상 맥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싸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는 발포주의 인기가 거품일지, 계속 이어질지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발포주 인기의 포문은 지난 4월 하이트진로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필라이트’가 열었다.   12캔에 1만원이라는 가격 이점과 발포주라는 신개념 맥주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출시 20일 만에 초도물량인 6만 상자가 완판됐다.

6월 말 기준으로 누적판매량은 48만 상자, 1267만캔으로 집계됐다는 하이트진로측 설명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26일 “초기 완판 이후 40여일 만에 추가로 42만 상자가 판매됐고 판매 속도는 초기 완판 속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추세”라면서 “필라이트의 판매 추이는 가정용 캔·페트 제품만 판매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필라이트 판매량이 400만 상자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과 달리 선전하고 있는 발포주 시장의 성장에 국내 맥주시장 1위 제품인 ‘카스’를 생산하는 오비맥주도 발포주 시판을 위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격이 낮은 발포주 출시로 카스 고객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오비맥주는 신중하게 관련 사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발포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가성비’라는 강점을 달고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예상보다 더 큰 호응을 얻으며 하이트진로에 이어 오비맥주까지 관련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지만, 이미 여름 성수기가 시작된 만큼 오비맥주의 발포주 출시가 실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롯데주류는  발포주 출시 가능성에 대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맥주 시장 침체기에 특별한 대안이 없는 만큼  발포주 인기가 계속된다면 대세를 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필라이트. 출처: 하이트진로

발포주 인기, 언제까지 갈까

발포주 인기가 계속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먼저 발포주 맛에 대한 소비자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는 점이 주목된다. `싼 가격에 이정도면 마시기에 만족한다`면서 반색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반면, 독일이나 벨기에처럼 맥주로 유명한 나라들은 주세가 낮아 한국에 수입해도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데, 굳이 싱거운 발포주를 찾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공존한다.

가볍게 ‘혼술(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 트렌드에 따라 발포주를 찾는 사람이 있겠지만, ‘혼술’을 즐기는 주당도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또, 발포주는 집에서 마시는 주류로는 소비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주류를 판매하는 음식점에서는 마진을 이유로 입점을 기피하고 있어  매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일본은 기린맥주에서 내놓은 발포주 ‘탄레이’가 대박을 치면서 부동의 인기 제품인 ‘아사히슈퍼드라이’를 밀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뒤이어 다른 회사들도 발포주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자연스레 품질 역시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거품이 빠진 일본에서도 장기 불황을 맞으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싼 가격의 발포주가 크게 흥행을 거뒀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발포주는 비슷한 개념으로 통용되는 제3맥주와 함께 일본 시장에서 꾸준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제로 성장을 맞으면서 주세법을 절묘하게 이용해 최대한 싼 맥주를 만들려는 연구에서 탄생한 게 발포주”라면서  “우리나라의 발포주 인기 역시 국내의 어려운 가계 형편을 나타내는  하나의 신호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주세법 개정으로 발포주 인기가 더 사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들린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맥주·발포주(發泡酒)·제3의 맥주 간 차등 적용하던 주세를 2020~2026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54.25엔(350ml 캔당)으로 통일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새로운 주세법이 도입되면 맥주의 가격은 떨어지고 발포주와 제3의 맥주 가격은 오른다. 소비자 입장에서 발포주의 가격이 비싸지면 더 이상 찾을 이유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원가가 비싼 양질의 술을 개발하면 출고 가격이 올라 기업의 세금 부담이 커진다”면서 “종가세 제도가 우리나라 주류 발전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도 주세법이 개정된다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발포주를 찾을 이유가 없어지는 그림도 예상할 수 있다.

차재헌 동부증권 연구원는 “하이트진로의 발포주 출고가격은 경쟁사인 오비맥주의 레귤러 제품대비 40%가량 저렴하다”면서  “한국 맥주시장은 프리미엄 수입맥주가 주도하는 현재의 주세 구조가 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하이트진로의 저가 맥주 출시는 공장 가동율이 50%를 밑도는 이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적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발포주 시장에 대해 “2000년대 초반 일본 맥주시장과 같은 형태로  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양호한 소비자 반응으로 하이트진로의 맥주 가동율이 상승할 경우,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