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리브스(Martin Reeves)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뉴욕오피스 시니어 파트너 겸 BCG 헨더슨 인스티튜드 소장.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우리 회사가 1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은 무엇입니까?”

지난 14일 서울 중구 장교동 BCG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글로벌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마틴 리브스 뉴욕 오피스 시니어 파트너 겸 브루스 헨더슨 연구소 소장은 기업경영에 생물학의 면역체계를 접목한 경영이론가로 유명하다. 그의 이 이론은 지난해 열린 TED 강연을 통해 발표되면서 비로서 전세계 CEO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모든 작은 기업들은 생물학적으로 생각한다…오늘날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영을 누리려면 생물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부활시켜야 한다”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100년 장수기업의 비법을 얘기했다.

마틴 리브스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뉴욕 사무소 시니어 파트너이자 매니징 디렉터이며 브루스 헨더슨 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1989년부터 전세계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경영 전략의 핵심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일을 했다. 일본 BCG에서 8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고 ‘장수기업’과 ‘전략과 지속 가능성’, ‘새로운 경쟁 우위 기반’등에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BCG 입사 전 일본과 영국의 ICI(종합화학회사)에서 마케팅과 전략기획 담당으로 일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석사, 영국 크랜필드 경영대학원 MBA, 일본 오사카대(일본어)와 동경대(생물물리학)에서 수학했다. 

우선 인터뷰 초반 리브스가 언급한 살아있는 생명체의 면역 시스템은 6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림프구와 백혈구 같은 면역 세포를 미리 수백만 개씩 만들어 놓고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한다(잉여, redundancy).

둘째, 백혈구뿐 아니라 B세포, T세포, 자연살해세포, 항체 등 다양한 세포들을 구비해 놓고 상황에 맞게 조합해서 대처한다(다양성, diversity). 리브스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기업이 새로 태어나며 사라지는 현 시대에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항상 강구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라고 했다. 

셋째, 표면 방어막인 피부, 빠르게 반응하는 선천 면역계, 특정 목표에 특화된 적응면역계 등 모듈로 설계돼 있어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부분이 대신한다(모듈화, modularity).

넷째, 사전에 겪어보지 못한 낯선 위협에 대해서도 적절히 맞춤 항체를 만들어 낸다(적응성, adaptation). 기업들은 급변하는 환경내에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잘 대처해내는 ‘임기응변’식의 면역계 반응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아무리 작은 위협도 미리 감지해 내고 한번 겪은 위협들은 나중을 위해 꼼꼼히 기록한다(신중, prudence).

그리고 마지막, 독립적으로 작동하기보다 신체라는 더 큰 시스템에 내장돼 신체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를 이루며 기능한다(착근성, embeddedness).

리브스는 기업 장수 비결을 생명체 면역 시스템과 비교하고 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이유에 대해 “최근 모든 기업의 수명은 점점 단축되고 문을 닫는 기업 역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내‧외부적으로 파괴적인 요소가 증가하는 동시에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생물의 면역시스템은 비교적 단계가 많아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회복력과 회생력을 키우는 동시에 효과는 강력하다”고 말했다.

생물체의 생존과 멸종 그리고 진화의 열쇠가 된 ‘면역체계’를 기업의 장수비결로 꼽은 리브스는 지금 시대의 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 마틴 리브스(Martin Reeves)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뉴욕오피스 시니어 파트너 겸 BCG 헨더슨 인스티튜드 소장.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위기 상황에 대비한 완충장치 마련(redundancy) ▲사업 다각화를 통한 다양성 유지(diversity) ▲모듈화를 통한 생존 가능성 확대(modularity)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adaptation) ▲예외적이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신중함(prudence) ▲사회와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뿌리 내림(embeddedness) ▲자기 파괴적 혁신(self-disruption) 등 7가지 면역체계를 기반으로 한 원칙 중 바로 ‘자기 파괴적 혁신(self-disruption)’이다.

리브스는 ‘자기 파괴적 혁신’을 보여준 대표적 기업으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Netflix)를 예로 들었다. 리브스는 “넷플릭스는 자기 파괴적 혁신을 통해 양손잡이 능력(새로운 사업과 기존 사업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조직)을 가장 잘 갖춘 기업 중 하나”라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양손잡이’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사업을 잘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동시에 개발하고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것을 파괴할 줄도 아는 ‘자기 파괴적 혁신’을 보여준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또 “넷플릭스는 기존 DVD 대여사업을 스스로 ‘파괴’하고 스스로 시장을 예측해 스트리밍 사업에 나선 것으로 매우 능동적인 면역체계와 닮았다”고 했다.

특히 대기업 또는 오래된 전통 있는 기업 일수록 기존의 것을 탈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의 삼성과 현대 같은 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으며, 실적도 좋으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리브스는 말했다.

그러나 리브스는 현재의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규모나 역량 면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면서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스타트업 기업에서 중소·중견·대기업까지 늘 긴장감을 유지하고 해당 기업의 산업분야 주류뿐만 아니라 주변부의 비즈니스 모델까지 눈여겨볼 것을 조언했다. 리브스는 “비주류에 속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을 통해 배울 점은 있고 살아남을지 않을지에 대한 문제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리브스는 기업이 롱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기업 내 사업기획과 관련된 팀을 두개로 나눠 하나의 팀은 기업에서 해오던 기존 사업에 주력하고 다른 한 팀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즉, 기존의 사업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추진하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대표적인 청량음료 제조업체 펩시코의 CEO 인드라 누이(Indra Nooyi)는 회사 내 팀을 두 개로 나눠 한 팀은 기존 비즈니스를 맡기고 다른 한 팀은 현재 비즈니스를 탈피하는 방식으로 적시적소에 필요한 인원 또는 필요한 사업을 적용한다. 이 같은 운영방식을 통해 다양한 사업 다각화에 나섰고 1998년 주스업체 트로피카나와 2001년 게토레이를 보유한 퀘어커오츠를 인수했다. 탄산음료 시장이 위축된 이후 시리얼과 스포츠 음료 등 건강식품 중심의 사업재편으로 오히려 기업가치를 상승했다. 펩시코는 지난 11일(현지시간) 2분기(4~6월) 순이익이 21억1000만달러(한화 2조3684억원)로 1년 전보다 1억달러(한화 1122억5000만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리브스는 기업에 충성하는 고객들뿐만 아니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고객들까지 늘 세심하게 살펴야 하며, 그 기업의 사업영역 이외의 산업에서 일어나는 사례들까지 철저하게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항상 가상 시나리오 세워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을 때를 대비하는 것도 그 기업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끝 무렵 리브스는 “알리바바(중국 e커머스 전문업체)는 늘 ‘변화할 이유가 없어도 변화할 것’을 강조한다”면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추후 변화할 능력조차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인간의 진화과정이라는 것이 지속적인 학습과정을 통해서 얻게 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인 존속 문제 역시 생물학적 시스템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