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사역원(司譯院)에서 담당했다. 중국어와 일본어, 몽골어 등 6개 국어를 교육했으며 종로구 적선동에 관사가 있었다. 주로 중인들이 역관이 되기 위해 들어갔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역원에 들어간 중인들은 수시로 원시(院試)와 고강시(考講試)를 치르고, 현재의 국가고시로 볼 수 있는 취재시(取才試)와 역과시(譯科試)를 통과해야 역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노력으로는 버티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외국어 교육의 방식이다. 원시에는 2명이 한 조가 되어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시험을 거듭하며 <노걸대>와 같은 교재를 공부했는데 말 그대로 ‘달달달 외우게 했다’는 후문이다. 얼핏 현재의 암기교육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세세한 문법이나 문장 구조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를 관통하는 큰 그림을 그리도록 했기 때문. 주어와 서술어의 위치가 약간 변해도 의미가 통하고 실전에서 ‘먹히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식 교육에 매몰되어 주어, 동사, 수식어 등의 위치를 따지면서 수학처럼 언어를 배우고 있는 현대의 교육을 우리 선조들이 본다면 크게 개탄하지 않을까.

맞다. 우리 선조들은 디테일한 지점을 파고들어 공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고 내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잡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역원 타령인가. 현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제를 우리 선조들의 ‘스타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탄생한 정권이다. 시작부터 풀뿌리 민중저항의식을 숙명처럼 가지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래서일까. 현재 청와대를 채우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참여정부 당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귀환한 ‘노련한 혁명군’을 보는 것 같다.

정치적인 논쟁은 차치하고 철저하게 경제적 관점에서만 논하면, 이 노련한 혁명군의 방식은 지나치게 각론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이슈가 대표적이다. 7월 19일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라는 카테고리 내부에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이 담겼다. 지금까지의 정권이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며 ‘미래를 향한 질주’만 거듭했다면 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소득분배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정도 나서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과 그 파급력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하나의 이슈에 매몰되는 지점이 마음에 걸린다. 청와대에 현황판까지 걸어두고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장면은 그 자체로 모든 기업과 경제 주체들에게 강력한 경고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와 서울시 등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물론 SK브로드밴드 같은 사기업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모 정부부처 관계자는 ICT 기술 관련 주제를 거론하면서 뜬금없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됩니다’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마치 일자리 창출이 대한민국 경제를 구원할 메시아가 된 분위기다.

하지만 공공분야 일자리 창출의 재원적 문제는 차치한다고 해도, 또 일자리 자체가 가지는 중요도에 대한 기회비용 논쟁도 차치해도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각론에만 매달려 모든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왜 일자리 문제를 핵심으로 삼았는가’라고 물으면 문재인 정부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지금은 온 세상이 일자리 창출에 나서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차라리 일자리 창출을 큰 그림의 일부로 두고 총론에 집중했어야 했다. 기업의 경영 상태와 한국 경제의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해 분석하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억지로 팔을 비틀어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강제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전반적인 시장상황을 평가하고 기업이 살아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제로 시장을 제어하고 간섭하며 기업 주체를 밀어붙이며,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활빈당이 되고 싶은가.

선조들의 큰 그림을 그리는 방법.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방안을 끌어내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각론이 아닌 총론에 집중하자. 저항과 혁명으로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최소한 정부는 그러면 곤란하다. 제발 큰 그림을 그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