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3 게임’이라는 장르가 있다. 게임 원리는 간단하다. 구슬이든 보석이든 또는 캔디건 돼지머리건 3개 이상의 같은 무늬를 가로나 세로로 정렬하면 일제히 사라지면서 점수를 얻는 게임이다. 때로 폭탄 기능을 설치해 이 모양을 건드리면 같은 모양의 퍼즐이 동시에 팡팡 터지면서 사라지도록 해 유저의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게임이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으로 말하면 국내에서 만든 게임으로는 애니팡, 해외에서 만든 게임으로는 캔디 크러시 사가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매치3 게임은 게임 조작이 쉬워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또 개발도 간단해 마음만 먹으면 개발자 서너 명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매치3 게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임은 아니라는 점 또한 매력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십 종의 유사 게임이 난립하고 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임은 몇 개 안 된다.

성공한 게임 중 하나가 애니팡일 것이다. 2012년에 출시된 애니팡은 일일 사용자 천만 명, 동시접속자 200만명에 월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적도 있으니 정말 대단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나도 한때 매치3 게임에 빠져 아내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이었던가. 그때도 지금처럼 강의와 연구, 조사로 매일같이 정신 없던 시절이었다. 집에 귀가하면 열두 시가 넘을 때가 많았고, 때로는 내 연구실의 명물 ‘라쿠라쿠’ 침대에서 자는 일도 많았다(연구실 방문자들은 매우 신기해 한다). 외부 회의도 머리 아픈 주제가 많았다. 매날 무슨 긴급회의고, 대책회의도 많았다.

어느 날 내가 사용하던 휴렛패커드 PDA에 매치3 게임이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비주얼드’라는 게임으로 PDA에 있는 게임은 거의 무료였다. 당시에는 캐주얼 게임이 유료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무료로 게임을 설치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집에 귀가해서 5분이나 10분 서너 판 가볍게 하다가 PDA를 끄고 다음 날 일정을 확인하고 전원을 끄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밤늦게 들어가 여느 때처럼 PDA를 들고 비주얼드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아내는 내가 밤늦게 들어와 게임을 하더라도 잔소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한 10분 정도 비주얼드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 늦게 들어 왔으면 빨리 씻고 자야지.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갈 텐데 언제까지 게임을 하고 있을 건가요?”

‘아니, 게임 좀 잠깐 한다고 왜 이렇게 잔소리 하지’

나도 시큰둥하게 한마디 했다.

“잠깐 게임 좀 하는 거 가지고 왜 그래.”

그러자 아내가 대꾸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앉아 지금 두 시간이나 게임하고 있거든요.”

두 시간이라니? 눈을 들어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시계 바늘은 이미 1시 반을 넘어 가고 있었다. 백팩을 옆에 내려 두고, 양말도 벗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시간 동안 비주얼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똑 같은 무늬를 찾아 맞추고 타임 오버면 다시 하고 이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터치를 반복하고 있었다. 평소 거의 화를 안내는 아내가 화낼 만 했다.

그 즈음 나는 요즘 중년 남자들의 유행어로 표현하는 ‘영식님’에 가까웠다. 중년 남자들의 자조 섞인 이야기 중에 하루 세끼 밥을 집에서 다 챙겨 먹으면 ‘삼식××’, 두 끼를 먹으면 ‘이식이’, 한끼를 먹으면 ‘일식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밥을 안 먹으면 ‘영식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 중 최고수인, 평일에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영식님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는 조찬회의가 매일같이 있어 집에서 아침을 먹을 수가 없었고, 저녁은 모임이 많으니 집에서 먹을 일이 없었다. 한번은 3일 정도 집에서 식사를 못하고 있다 주말에 모처럼 가족과 식탁에 앉았는데 내 수저가 놓여 있지 않았다. 아이들 수저는 있는데 수저가 없어서 내 수저가 없다고 했더니 아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깜박했네.”

진짜로 깜박한 것인지, 아니면 경고의 의미인지 두고두고 그 날의 의미를 되짚어 봐야 했지만 어쨌든 매일 같이 나의 생활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아내가 밤늦게 들어와 PDA 게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말 없이 넘어갈 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임은 간단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전세계인을 열광시킨 ‘퐁(PONG)’도 너무도 간단한 게임이었다. 1972년 미국 게임사 아타리에서 발매한 아케이드인 퐁은 마치 탁구처럼 두 사람의 플레이어가 교대로 화면을 뜨는 공을 쳐 상대 코트로 넘기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요즘도 가끔 매치3 게임을 하지만 그 때처럼 몰두한 적은 없다. 일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다만 요즘의 매치3 게임은 뭔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템 판매라는 유료화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지 못하면 ‘하트’가 없다거나 ‘코인’으로 아이템을 사라는 안내창이 뜬다.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기다려야 한다.

또 유저들의 편의에 너무 신경을 써(?) 3개의 닮은 도형을 찾기도 전에 깜박거리면서 ‘나 여기 있다’고 안내해 주는 것도 거슬린다. 게임은 내가 하는 것이지 게임이 나를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한번 더 밤늦게 집에 들어와 주저 앉은 채 게임하고 있으면 노후가 문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