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머(Polymer), 즉 고분자(중합체)라 하면 ‘플렉서블(Flexible) 소재’를 떠올릴 만하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채용한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도 플렉서블한 형태라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일종이다. 사실 플렉서블이라 하면 연상되는 부품은 케이블류가 다수인데, 소자 중에선 가장 일상화된 게 디스플레이가 아닐까 싶다.

디스플레이 부류에서 플렉서블한 제품들이 개발되면서 전지 쪽도 비슷한 비전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플렉서블 배터리라는 개발 목표를 지향하는 이들도, 플렉서블 배터리가 뭐든지 될 수 있을 듯한 ‘차세대 전지’인양 팔고 다니는 이들이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플렉서블 배터리는 가장 안전한 기술이며, 휴대폰을 넘어서 배터리 전기차용 이동 전원으로 유망하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형태도 필름 형태부터 노끈처럼 생긴 것도 연구 시제품으로 나왔고, 마디를 가지는 굴절식 배터리도 제안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초로 상용화된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는 플렉서블한 필름을 연상하기보다 은박지에 싸인 단단한 엿을 생각하는 게 맞다. 제조공정도 레진 시럽을 갖고 형체를 갖춘 후 굳힌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딱하고 뻣뻣한(Stiff)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 등에 실제로 적용이 됐던 것은 플렉서블 배터리가 아니라, 굽은(Curved) 배터리가 맞다. 최초 제조 시 장착면의 곡률에 맞추어 굽은 형태로 미리 성형하여 만든다.

그렇다 해서 실제로 플렉서블 배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OHP 필름이 팔랑거리는 것을 연상시킬 정도의 얇은 박막전지가 실재하는 플렉서블 제품이다. 이런 형태는 고에너지 밀도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기능성 마스크 팩 같이 저전력으로 충분한 곳에 쓴 일차전지로 페이퍼 전지 수준이다. 미국의 벤처 24m이 만든 시제품도 낮은 에너지 밀도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

통상적으로 모바일 IT나 배터리 전기차에 쓰이는 파우치 포장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는 필연적으로 딱딱한 배터리일 뿐이다. 그러니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는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다는(플렉서블) 주장은 무지의 소치임을 양지하자. 여기에 하나 더해, 잘라서 용도대로 쓸 수 있다는 말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종이를 잘라 쓰듯 할 수 있다는 말도 망상에 가까운 게, 자른다 해서 양음극 단자를 확보할 수 없을 뿐더러 자르는 순간 ‘단락(Short-Circuited)’이 일어나서 위험할 뿐이다. 외려 플렉서블 배터리를 외치고 다니는 이들 중 다수가 에너지 분야 사기꾼이거나 업자인 경우가 많으니 조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