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핀테크 산업은 답답하다. 미국과 영국 등 핀테크 선진국들은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처럼 한국 핀테크 산업이 더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는 금융당국 혹은 금융사의 변화로만 해결할 수 없다. 금융소비자들이 현명한 서비스 선택을 통해 주도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시기다.

글로벌 핀테크 산업은 전통 금융강국인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작년 기준 미국과 영국의 핀테크 기업 수는 각각 25개, 12개로 1, 2위를 기록했으며 이어 호주, 중국, 이스라엘, 독일 등이 뒤따르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기술력과 뉴욕의 발달된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핀테크 산업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 영국도 런던 국제금융센터와 스타트업 클러스터인 테크시티 간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편, KPMG가 발표한 ‘2016년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을 보면 100대 기업 중 중국 핀테크 기업이 8개로 아시아 지역 전체로는 3분의 2를 차지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중국 온라인 금융 기업인 앤트파이낸셜은 전체 글로벌 핀테크 기업 순위에서 1위에 선정됐다. 지역별로 보면 미주 지역이 100대 기업 중 36개로 가장 많은 기업을 보유, 뒤를 이어 유럽(영국 제외), 중동·아프리카, 아시아, 영국, 호주·뉴질랜드 순으로 나타났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기술은 금융산업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에 금융산업 발전과 동시에 금융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금융업은 규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업종인 데 반해 IT기술의 발전은 규제 완화를 외치며 나아간다. 이렇다 보니 핀테크는 물론 각종 기술융합 산업 발전에 있어서 규제가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된다.

핀테크 포럼이 핀테크 기업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핀테크 기업이 실감하는 ‘규제의 정도’는 ‘매우 심함’이 20%, ‘다소 심함’이 50%로 나타났으며 ‘규제가 심하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종류의 규제’가 29%, ‘관련 정보 부족’ 24%, ‘높은 대응 비용’ 18%의 응답률을 보였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핀테크 업계 관계자들은 “규제 때문에 무엇을 하기 어렵다”며 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핀테크를 통한 금융산업 혁신은 사실상 꿈에 가깝다. 그만큼 소비자들도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핀테크 선진국들의 규제는 어떨까

어떤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저해하는 규제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무작정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특히 금융업은 사람들에게 민감한 ‘돈’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미국과 영국 등 핀테크 선진국들이라고 해서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여타국들의 규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투자자보호와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엄격한 금융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핀테크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규제 환경이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금지한 것 이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비용편익 분석에 기반, 비합리적 규제를 지속적으로 정비한다.

우리나라도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제시됐지만 ‘검토’만 여전하다. 영국의 경우는 미국과 좀 다르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기존 핀테크 지원사업인 금융혁신 지원프로그램을 확대한 ‘금융규제 샌드박스’(RegulartorySandbox) 도입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모래상자 안에서 놀이하도록 하는 것에서 유래한 제도로 핀테크 기업에게 혁신적인 신규 금융상품을 규제의 제약 없이 일정 기간 동안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영국은 금융시장 혁신 촉진과 규제 비용 및 위험 절감 효과를 누리는 등 핀테크 생태계를 만들었다.

호주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중국은 영국과 유사한 실험적 규제 완화를 추진해 새로운 플레이어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는 등 경쟁을 통한 금융혁신을 달성했다.

 

한국, 은행 중심 시장… 경직적 규제

‘창조경제 하에서의 벤처기업 발전을 위한 벤처캐피탈의 역할 제고방안’(송치승)에 따르면 주요 국가별 금융구조체계와 금융발전 수준에 있어서 은행 중심의 국가보다는 자본시장 중심의 국가들이 금융발전 수준이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구조로 돼 있으며 벤처캐피탈 활성화 정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험자본’의 성격이 투자에 가깝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국은 은행 중심 금융구조로 벤처캐피탈 활성화 정도는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여타 은행 중심 국가들 대비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독일은 은행 중심 금융구조와 벤처캐피탈 활성화 정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기준 핀테크 기업 수 기준 이스라엘과 함께 공동 5위에 올랐지만 총 기업 수는 6개로 미국·영국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보면 핀테크가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금융혁신이 빠르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중심 금융구조와 네거티브 혹은 샌드박스 규제 등 2가지가 맞물려야 한다.

중국의 금융시스템은 낙후돼 있다고 인식돼 있으나 지난 수년간 중국 기업들의 인수합병(M&A) 시도, 핀테크 산업의 빠른 성장은 ‘투자’ 중심 즉,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구조가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실험적 규제 완화가 맞물린 결과가 중국의 핀테크 발전으로 이어졌다면 한국은 규제 완화만으로 핀테크 발전을 누리기 어렵다.

한국은 은행 중심 금융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한 지 3달이 넘은 상황이지만 은행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은산분리’에 대한 고민만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규제보다 소비자 보호와 신뢰가 중요

핀테크의 유형과 구성요소는 크게 결제시스템, 플랫폼,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등이다. 이를 이용 P2P 플랫폼을 통한 크라우드펀딩, 대출, 보험 등은 기존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계층과 틈새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핀테크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부분은 바로 ‘비대면 거래’다. 사람 간 신뢰를 기반으로 했던 금융업을 비대면이 어떻게 뚫을 수 있을지 반문할 수 있지만 이미 우리는 ATM, 인터넷뱅킹 등을 통해 비대면에 ‘일부’ 익숙한 상태다. 따라서 비대면 활성화에 따른 신뢰 저하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금융거래에 필요한 많은 정보가 인터넷상에서 제공되면서 정보 비대칭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설명에 대한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고 이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

또 금융의 모든 것이 전자화되면서 이에 따른 사고 발생률 증가, 진입장벽 하락에 따른 불안전성 등은 한국의 핀테크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핀테크의 핵심이자 주인공은 기술도 금융도 아닌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점은 핀테크의 궁극적 방향이 소비자 보호와 신뢰로 향해야 함을 뜻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한국 핀테크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글로벌 경쟁력에서 뒤처진다.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국경은 필요 없다. 그만큼 핀테크의 치열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수 있을지 여부에 소비자 관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2017 머니엑스포’를 시작하며

<이코노믹리뷰>는 매년 7~8월 ‘머니엑스포’를 통해 금융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각종 금융상품 선택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해왔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부동산 등 분야별 세부적인 취재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보다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유례없는 저금리 시대를 맞이하면서 ‘머니엑스포’에 대한 고민은 매년 더욱 커져만 갔다. 물론 수많은 금융상품이 여전히 존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또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 속에 진정으로 금융소비자들을 생각한 상품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었다. 금융상품개발자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A 상황이니까 B 상품이 좋아”라는 이미 정해진 답, 즉 판매를 하기 위한 포장에 대한 비판을 말한다.

이에 올해 ‘머니엑스포’의 대주제를 ‘맞춤형 금융서비스’로 정하게 됐다. 즉, 상품이 아닌 핀테크 시대를 맞이해 어떤 금융서비스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지를 알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금융상품을 각사의 서비스를 통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물론 기존과 다르게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뗀 한국 핀테크 시장은 여전히 갈 길이 멀고 그만큼 미흡하다. 그만큼 많은 핀테크 관계자들이 한국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한국 핀테크 시장은 그 자체는 물론 한국의 금융구조, 규제 그리고 소비자 보호 문제 등으로 비단길은커녕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핀테크는 “나를 알아주는 금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소비자들의 따끔한 질책이 더욱 나은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데 이견은 없다.

금융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머니엑스포’ 또한 2017년을 기점으로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특히 소비자 중심의 금융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이번 ‘머니엑스포’는 참으로 뜻깊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