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은 유럽연합으로부터 시장 독과점 등을 이유로 막대한 과징금을 부여받는 등 고난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악의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당시 옥시 사장을 역임하고 있던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은 비록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여전히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감내하고 있으며, 구글 지도 반출과 논란된 소모적인 논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글로벌 기업의 무임승차도 도마위에 올랐다.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의 ‘2016년 대한민국 무선인터넷산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해 구글플레이를 통해 국내에서 4조4656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 수수료 수입만 1조3396억원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유한회사로 스텔스 비행을 거듭하며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방위적 제재 가능성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구글이 박물관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타났다. 싸늘한 여론과는 별개로 구글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경쟁력을 효과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 박물관

구글이 국립중앙박물관과 만났다. 양쪽은 11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체험 공간이라는 주제로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 박물관’을 열고 다음달 27일까지 7주간 운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과 구글 아트 앤 컬처가 협업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선보이는 본 박물관은 구글 아트 앤 컬처 오프라인 체험 공간이다. 인공지능(AI) 기술과 가상현실(VR)은 물론 기가픽셀 등 첨단 기술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문화유산 및 예술 작품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에서는 세번째며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려진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누구나 무료로 방문 가능하다.

로랑 가보(Laurent Gaveau) 구글 아트 앤 컬처 랩 총괄은 “국립중앙박물관과의 협업을 통해 아태지역 최초로 서울에서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 박물관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며,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의 기술적 발전으로 문화를 체험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번 박물관을 통해 어린이들이 전 세계 문화유산을 체험하고 문화, 예술,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더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 박물관 기자회견.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총 4개의 공간에서 문화와 기술의 만남을 체험해볼 수 있다. ▲전자 그림판 및 틸트 브러시를 사용해 디지털 그림을 그려보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그림’ 공간 ▲기가픽셀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미술작품을 고해상도로 감상할 수 있는 ‘작은 것은 크게, 먼 것은 가깝게’ 공간 ▲카드보드 및 뮤지엄 뷰 기능을 사용해 세계적인 유적지를 실제 가본 것처럼 감상할 수 있는 ‘가보지 않아도 가볼 수 있는 세상’ 공간 ▲인공지능 기술로 어린이와 컴퓨터의 생각을 이어주는 디지털 실험실 ‘이어주고 묶어주고’ 공간이다.

이번 반짝 박물관 개막에 맞춰 이하응 초상화(보물 제1499-2호), 태평성시도 등 소장품 6점을 아트 카메라로 촬영하여 초고해상도 기가픽셀 이미지로 최초 공개한다. 박물관 운영 기간 동안에는 어린이박물관 교육 강사가 직접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어린이박물관 내 도서관에서 운영된다.

이번 협업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구글이 장기간 호흡을 맞추던 '문화와 ICT 시너지 전략' 연장선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2013년 국내 박물관 최초로 구글 아트 앤 컬처와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구석기시대 주먹도끼, 신라 진흥왕 순수비, 신라 반가사유상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 박물관의 내부를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둘러볼 수 있는 뮤지엄 뷰 기능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

▲ 아이들이 가상현실 기기로 전시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포인트가 보인다

반짝 박물관을 돌아보면 묘한 기시감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바로 인테리어다. 실제로 박물관 내부에 위치한 테이블과 벽은 물론 다양한 조형물에는 모두 골판지 형태의 이미지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구글의 저렴한 가상현실 기기인 카드보드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골판지로 만들어져 있는 의자의 경우 노골적인 카드보드 이미지를 차용했으며 박물관 한쪽에는 실제 카드보드가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 카드보드 형태로 만들어진 박물관 책상.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카드보드 형태로 만들어진 박물관 의자.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구글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반짝 박물관을 조성하며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강조하려는 분위기가 확연했다. 한수 어린이박물관 과장은 "구글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공간을 꾸몄기 때문"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너무 나간 해석이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에 너무 진한 구글색(色)이 강조된 것은 아닐까?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구글을 향한 업계의 부정적인 감정을 염두에 둔 질문이다. 한수 과장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구글의 만남은 오프라인의 박물관과 온라인의 구글이 만났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ICT 기술을 통해 밋밋할 수 있는 박물관의 전시기능을 크게 확장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물관의 미래에 대해 짧은 이야기도 나눴다. 한수 과장은 "구글과의 협업을 통해 박물관도 많은 변화와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실제로 구글과 협업할 당시 내부에서도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일종의 고민이다. 한수 과장에 따르면 전시물들이 즐비한 곳을 천천히 살피는 것이 지금까지의 박물관이라면 미래의 박물관은 공간과 시간을 넘어 모든 영역에서 '박물관 사용자 경험'이 관통하게 되는 시대다. 박물관을 방문해 ICT 기술로 전시품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 나아가 다양한 설명을 생생하게 체험한 후 집으로 돌아가도 동일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 세계적 명화를 디지털로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실제로 박물관에는 가상현실 기기로 전시품을 체험하고 그 이면의 역사를 '공감각'을 통해 습득하는 장치들이 상당히 말았다. 여기에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닌 촉감을 강조하는 전시 코스도 있었으며 세계적 명화들을 디지털 정보로 만들어 자세하게 뜯어보는 코너도 있었다. 이러한 ICT적 관점을 관람이 끝난 후에도 연장시킬 수 있어야 미래 박물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ICT 기술의 발전으로 박물관의 미래가 진화한다면, 오프라인에서의 박물관이 가지는 매력은 퇴색되지 않을까. 한수 과장은 "오프라인은 오프라인 대로의 매력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며 "외국의 경우 유료 가상현실 기기를 제공하면서 오히려 수익이 올라가는 현상이 종종 소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ICT와 박물관의 만남이 궁극적으로 절묘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수 과장은 "사람들이 왜 박물관에 오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전시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자신이 알고있는 전시품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싶어 한다"고 말했다. 결국 박물관의 목적이 새로운 정보 습득보다 '이미 알고있는 전시품'의 생생한 체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ICT와의 만남은 필연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 세계적 명화를 확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터치 스크린 지원.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콘텐츠와 ICT가 만나다

반짝 박물관은 전시품에 ICT 기술을 더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구글의 브랜드 가치도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프로젝트다.

박물관의 미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중앙박물관 측은 "전시 기간이 여름방학과 겹치기 때문에 최대 10만명의 인파를 예상하고 있으며, 그 시기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니터링해 스마트 데이터로 구현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시너지며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오프라인 거점 협력이다. 구글이 주축이 되어 보여준 반짝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