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3월 공채를 통해 한국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이사장에 취임했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는 거래소 이사장에 앉히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이사장된 것이 사고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취임하자 마자 거래소 창립후 53년만에 처음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합니다. 제가 오래 버티진 못했어요. 1년6개월만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이후 10년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지난 6일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현 세계미래포럼 대표)을 만나봤다. 평생을 기획재정부와 국무총리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후 거래소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던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강산이 한 번 바뀔만한 기간 동안 그는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총선에 나가 두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젠 정치인이자 교육자로 변신해 인생 이모작에 나 선 이 전 이사장의 새 정부에 대한 바람과 정치인으로써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이정환 세계미래포럼 대표. 사진=천영준 전문위원

세계미래포럼이라는 씽크탱크를 이끌고 있고, 기업인들도 교육하고 있다. 어떤 취지로 만들어진 기관인가.

“요즘 변화의 속도가 정말 빠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개발과 성장에 몰두하다 보니 미래 대응 역량이 부족했고, 연구도 많지 않았다. 2009년에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주도로 미래에 대한 연구, 교육, 컨설팅을 함께 진행하는 기획재정부 인가 비영리법인으로 출발했다. 개인, 기업, 국가가 모두 미래에 대해 체계적인 대비를 하고, 우리 포럼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지식을 공급하자는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로 미래를 단수(Future)로 말하지만 우리는 복수(Futures)로 쓴다.저마다 도래하게 될 미래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세계미래포럼에서는 기업들이 불확실한 환경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지, 준비는 잘 되어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미래준비지수’라는 지표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이 있다. 대기업 경영자들을 만날 때와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을 듯 하다.

“최고경영자 과정 졸업생이 4000명인데 그 중 3000명 정도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다(1000명은 대기업 CEO). 중소기업 경영진들은 기업교육에 덜 노출되어 있고, 이론적인 지식과 실무적인 통찰을 겸비할 수 있는 교육에 목이 말라 있다. 우리 법인은 비영리 사단법인이지만 정부에서 무상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받지는 않고 있다. 다만 다른 교육과정보다 다소 적은 비용으로 운영하는 편이어서 매우 인기가 좋은 편이다. 양질의 교육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게 세계미래포럼의 방침이다.”

미래 이야기를 하자면 혁신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어떤 혁신 기조를 갖고 있다고 보는가.

“진보 정권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부 역할이 비대화된다고 보면 오산이다. 과거에 대기업 주도 혁신 패러다임에서는 항상 혁신으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4차산업혁명 등이 본격화되면 생산 자동화에 의해 대기업은 비용을 축소하느라 더 많은 일자리 감소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혁신 정책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혁신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 주는 것도 국가가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매우 복합적이고 정교한 혁신 경제 정책을 지향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공공 서비스 부문, 사회 복지 부문에서 일자리도 만들고, 또 고령 은퇴자들도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고, 대기업 관점에서 직무 역량이 퇴화된 것처럼 평가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도 주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또 ‘공공개혁’을 원하고 있다. ‘공무원’은 되고 싶어 하지만 ‘공무원 마인드’는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모든 정권이 규제를 없앤다고 했다. 규제 개혁도 특정 정치 성향에 귀속되는 아젠다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규제를 정리하고 합리화할 것이냐에 있다고 본다. 즉 ‘일’의 문제다. 정부는 얼마 안 되는 권한을 갖고 민원인들을 못살게 구는 당국자 마인드를 철저하게 개선해야 한다. ‘사람 중심 경제’라는 모토 안에는 ‘사람을 위한 경제’라는 뜻이 들어 가 있다. 국민들이 정책의 수요자이기 때문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공무(公務)가 처리될 수 있도록 체제가 구비되어야 하고, 공무원들이 ‘쓸데 없는 일’을 안 하도록 리더들이 적극적으로 일을 살펴야 한다. 규제도 문제지만 행정 지도가 매우 심각하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은 규모 상관 없이 행정 지도에 구애를 받았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려면 기업의 창의혁신 활동(R&D 투자, 인적자원투자)이 필수인데, 규제와 행정지도가 너무 큰 장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당시 엑티브엑스, 공인인증서 등에 대해 적극 재검토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특정 규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혁파를 외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투명한 경제활동이 일어나도록 정부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촛불혁명이 ‘지대추구’(Rent-seeking)형 집단에 대한 혁파 요구와도 결합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유형의 지대를 둘러 싼 갈등이 있다. 특히 세대간 갈등이 많았다. 정치 쪽에서는 지역간 불평등. 지역간 격차 등이 극심했다. 아직까지는 영/호남 문제가 강하지만, 앞으로는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로 인한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다. 새 정부 자체는 ‘약자’ 입장에 서려고 노력한다고 본다. 우선 전체적으로 보면 지역 균형 발전 쪽에서 정책적인 포커스를 많이 두는 듯 하다.. 문 대통령이 정책 기조로 언급한 것 중에 지역 인재(공기업) 의무 할당이라든지(30%), 청년 고용제를 채택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현재 여성 각료를 30%로 하고 임기 말까지 50%로 목표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결국 지대 추구 집단을 혁파하는 과정은 규제 개혁에서 비롯된다. 규제 당국자의 존재로 인해 힘이 한 쪽으로 쏠리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이해관계자 집단들이 단결해서 권한 있는 당국자를 포섭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그를 통해 자기 지대를 추구하고 사다리를 걷어 차는 일이 벌어진다. 따라서 지대 추구형 집단을 정리하려면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

금융 전문가로서  '관치' 소위 ‘정치금융’이 과해 금융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는 의견에 대한 견해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해 보면서 공무원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됐다. 당시 조직을 경영하면서 노조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문제, 정부 당국과 관계설정하는 문제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게다가 기획재정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책무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사실 한국거래소만 하더라도 기업공개(IPO)를 해야 한다. 지금 거래소는 100% 민간주식회사다. 과거 2007년 당시 기업공개를 하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버렸다. 세계에서 정부가 거래소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은 동구권에 이젠 해체된 옛 유고슬라비아 뿐이다. 한국은 정부가 주식을 한 주도 안 갖고 있으면서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뒀다. 런던이나 뉴욕 등은 대부분 거래소가 기업공개 돼있다. 지난해 거래소가 금융지주회사로 개편하기 위해 법 개정안이 나왔는데 그 후에 기업공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합쳐 놨던 유가증권, 선물, 코스닥 등의 부문이 다 독립하게 될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많이 앞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 온다.

“원래 한국거래소가 일본보다 앞선 시스템을 채택했었고, 그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배우러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도 오곤 했다. 해외 거래소들은 자본 연결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해외 사례들을 연구해 경영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범유럽증권거래소인 유로넥스트(Euro Next)가 프랑스 어음거래소를 올 초 인수했다. 런던 증권거래소가 독일 증권 거래소와 합병을 시도하면서 반독점 규정을 어기지 않기 위해 프랑스 어음 거래소의 과반수 이상 지분을 유로넥스트 쪽에 넘긴 것이다. 서로 국가별로 다른 증권 거래 규제로 인한 불이익을 없애고 상장사들이 계속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방법으로 제도 운영 비용이 줄어들게 되면 더 많은 증권사, 투자자들이 시장에 유입될 수 있다.”

기업만 상장하라고 권유하지 말고 한국거래소가 직접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증권 파동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한국거래소가 많은 기업들에게 상장을 권유하는데, 자신들만 그 논외 대상으로 되어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아닌가. 자본 조달을 촉진하고 투명 경영을 이야기하려면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 파생상품 시장이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한숨 나온다. 4~5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가 CME와 1위, 2위를 다퉜다. 또 한국은 코스피 시장이 1차/2차/3차 산업이 균형적으로 상장되어 있고 그 지수가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도 잘 돼 있다. 코스피 200 선물 옵션은 그런 제대로 된 기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뒤에 갑자기 파생상품거래세를 만들고, 거래 단위를 올리고 금액을 늘리고 하니까 시장이 죽어버렸다. 대만의 선물 거래가 대만이 아니라 싱가폴 거래소에서 이루어진다. 처음에 대만이 잘 되다가 규제 때문에 시장이 위축되니 대만 선물이 싱가포르에서 더 많이 거래되는 상황이다. 한국도 곧 그런 상황이 올 지 모른다. 빨리 파생상품 시장을 과거 수준으로 돌려 놔야 한다.”

노무현 정권 당시 동북아 금융중심지 이야기도 있었다. 그 기조를 되살려볼 만할 것 같다.

“여의도(일반종합), 부산(해양/파생 특화)등이 다 금융중심지를 지정받을 때 분업 구조로 진행됐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 공기업들이 분산되었지만 제대로 된 해외 기업들이 들어 와서 투자를 안 하는 상황이다. 해외 기관들이 많이 들어 온 런던의 ‘카나리-워프’(HSBC, 시티 센터 등이 위치) 수준은 못되더라도, 여의도는 해외 금융 기관을 정말 많이 유치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는 거래소가 해외상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금융 기업들도 문화 개선이 돼야하고 외국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필요하다. 싱가포르, 홍콩 등은 일반 시민들이 영어를 다 잘 하고, 금융 분야 종사자들도 영어 구사에 큰 문제가 없다. 한국은 주거 여건은 최상이라고 하는데, 교육 문제가 제일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왕 금융중심지 지정을 했으면 세제-행정 지원을 과감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금융 관련 규제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동북아 금융중심지 전략의 원의(原意)를 되살려가는 일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게 될 '따뜻한 혁신'은 어떤 방향으로 갈까. 

"문재인 정부는 10년 동안 적체돼 있었던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개혁하기 위한 '문제 해결적 접근'으로 임하는 정부 아니겠는가. 금융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무수한 개혁 과제가 있다. 요즘 사회적 경제와 도시 재생이 중요한 정책 어젠다로 언급되고 있는데 나도 많이 연구하고 있다. 금융도 결국 경제의 혈액으로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활동력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촉진하는 인프라다. 그리고 여러 산업을 연결하는 매개자다. 금융 네트워크가 또 하나의 자원 조달 원동력이 되고, 대기업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스타트업, 영세상인들까지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두 번 출마했던 부산 남구에는 해방 이후 갓 지어진 집들이 많다. 7-8평 주택에  두 세 가구가 살며 공중화장실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 개선된 사회 인프라를 제공해 드리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 혁신 정책이 필요하고, 때로는 금융 분야의 도움도 빌어야 한다. 부산 감천 문화마을은 지역 공공 디자인 차원의 성공 사례다. 전주 한옥마을도 한복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문화콘텐츠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옛 거리 재생 사업의 결과 아니겠는가. 아파트만 짓는게 답이 아니다. 산복도로 인근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들, 어린이들을 위한 에스컬레이터나 미래와 과거를 이어주는 '전통 살리기' 같은 것들을 위해 아이디어가 모이고, 서로 함께 고민하다 보면 공동 혁신(co-innovation)이 가능해 지고 '사람 사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그런 가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할 것이다."

이정환 세계미래포럼 대표는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동북아금융중심지 지정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해외 금융 기관의 한국 투자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그는 2012년 총선과, 2016년 총선에서 두 번 부산 남구 갑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선 전국에서 2등으로선 가장 높은 48.4% 득표율을 획득했지만 낙선하는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주요경력]

1975.06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1989.05 세계은행 경제자문관

1993.08 재경부 금융실명제실시단 총괄반장

1995.06 대통령 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1998.05 주 OECD 한국대표부 참사관

2001.06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2002.08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2003.04 재정경제부 공보관

2004.09 국무총리 정책상황실장

2005.01 한국증권선물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

2008.03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