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서 토마토 재배를 하고 있는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그래도팜 제공).

“말로만 농촌 브랜딩이 아니라 진짜 차별화된 농산물을 갖고 고객들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드디자이너였던 원승현(35) 그래도팜 대표의 말이다. 그는 지역 기업 및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기획, 패키징, 컨설팅 관련 회사를  다니다가 영월에서 토마토 농사를 하는 부모님을 따라 낙향, 3년째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원승현 대표의 ‘기토’는 ‘기똥찬 토마토’, ‘기가 막히게 맛있는 토마토’ 등 고객들의 후기를 줄임말로 만들어 낸 토마토 브랜드다. 원 대표는 유통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제품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영월로 낙향해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그 계기가 무엇일까.

“대학에 다닐 시절(홍익대학교 프로덕트디자인전공)부터 부모님의 토마토 농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복잡한 서울 생활보다는 시골에서 좀 더 조용하게 나만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농부로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준비해 왔다고 해도 되겠다. ‘기토’는 대학생 때 아버지의 토마토를 좀 더 브랜드화해서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고객들이 지어주신 이름을 줄임말로 만들어 낸 공동 창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소비자들은 기토가 신품종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다. 그 전에는 토마토 농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부모님의 일을 돕게 되면서 정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토 이름이 붙은 이후 상품에 대해 고객들의 관심이 계속 늘어나면서 나도 농촌에 몰입하게 됐다.”

귀농/귀촌이 정말 어렵다고들 하지 않는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을 수도 있을 법 하다.

“일단 내 경우에는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별로 적응하는 데 고생하지는 않았다. 많은 경우 귀농/귀촌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데, 사실 지역 배드민턴 동호회 같은 데 나가보면 의외로 도시에서 온 분들이 정말 많다. 60%는 귀촌한 분들이 계시는 모임들도 있다. 막연하게 귀농/귀촌이 어렵다기보다는 도시에서의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시골에 오면서 조금씩 고민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이 어려운 부분도 클 거라고 생각이 된다. 농촌으로 가는 것은 매우 많은 계획과 전략적 고민이 전제된 하에 필요한 선택이다.”

▲ '그래도팜'에서 생산한 '기토'(제공 : 그래도팜)

농촌에 가서도 항상 작황이 예상에 일치하는 것은 아닐텐데. 요즘 가뭄도 가장 큰 문제다.

“일단 많은 농민들이 자신이 수 십 년 동안 겪어 왔던 경험을 확대 적용해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부모님께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 중 하나가 ‘100번 반복해 농사를 지어 보지 않고 어떻게 장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일침이었다. 농사는 1년에 보통 1번 짓는다고 하면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몇 번 제대로 된 반복을 못해보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데이터만으로 자신이 작황을 가늠해서 일을 하는 것은 실패율이 높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정밀 농업이나 스마트팜에서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수 대에 걸쳐서 농사를 지어 온 집에서 계속해서 경험을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농촌이 좀 더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로 발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브랜드 전문가로서 활동하다가 농사를 짓는 입장인데, 농산물 브랜딩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가.

“일단 많은 분들이 실제로 제대로 된 상품 가치를 갖는 농산물을 생산하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서 더 많이 파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특정 정부 지원 자금에 접근할 수 있는 관리자와의 인연으로 계속해서 작목을 바꿔 가며 농사를 짓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분들은 제대로 농산물에 애착을 갖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고 본다. 한 작목을 짓더라도 수 년 동안 반복 학습을 하면서 마음을 쏟고 또 작물과 소통하는 아날로그적인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농민들은 6차 산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 가공식품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작목을 바꿔가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 상품에 관심을 쏟는다. 1차 생산물이 좋아야 가공 상품이나 브랜딩된 상품도 좋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농산물에서 제대로 된 브랜딩을 하면서 한 작물에 집중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에는 그로어스(Growers)라고 해서 청년 농부 간의 모임을 하면서 다른 농부들이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참고도 해 보고 교류하면서 연대감을 가진다. 그리고 그로어스 중에 지역이 좀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서 ‘밭티’라는 그룹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풀밭 위의 식사’라는 컬리너리 투어를 기획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농장으로 와서 제철 농산물로 만든 요리를 먹으며 경관을 즐기는 일종의 미식여행 같은 것이다. 팜 파티(Farm party)라고도 하는데 앞으로 대기업이나 콘텐츠 플랫폼 기업들과 협업을 하면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데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고 있다. 그 외에는 SPC 같은 대기업들과 제철 토마토나 코스요리를 통해 홍보하는 행사같은 것들도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한다.”

브랜드 파머’로서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모든 콘텐츠는 제품이 좋아야 승부가 난다는 것을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경험해 봤다. 일단 수준 높은 작물을 홍보하고자 하는 농민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계속해서 직거래할 수 있는 유통채널을 뚫는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수집상이나 주요 유통 채널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는 상품을 계속해서 유통해주고 구매해 주는 충성 고객들을 만나게 되면서 사업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 항상 겸손하고 스스로에게 정직한 자세로 상품을 브랜딩하고 감동을 전달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