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섬을 세 번씩이나 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 친구들과 가게 되며,

남해를 세 번째 가게 되었습니다.

몇 번 가게 되니, 관광지 둘러보는 것은 최소화하고,

현지 역사와 얽힌 사람들에 주목하게 되더군요.

 

사람이 드문 시골 마을서 어르신으로부터

지금은 남해가 노인 천국의 4만5천명 인구지만,

60년대는 13만이 넘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국내 시골 마을 어디나 비슷한 현상이지만,

이곳 남해섬이 400년전 임진왜란의 전란탓에 7년간 무인도가

되었었던 역사적 아픔과 괜히 관련성이 있나 하는

감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또 이곳에서 5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충무공이 생각되더군요.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러며, 54세의 사람이 가졌던 인격과 인품의 정도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나이를 지난 나를 돌아보았고,

순탄치 못한 인사청문회 정국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친구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부터 6여년전 29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갑자기 백수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세계 10대 트레일 길을 걸으며

‘영국을 걷다’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해파랑길’ ‘투르 드 몽블랑’ 같은 책을 내며,

엔지니어에서 멋진 여행기를 풀어내는 작가로 변신했습니다.

퇴직 후 전직 '00'으로만 살려 하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반전을 보여주고 있지요.

 

퇴직 후 망막했을 시절, 그는 남해의 바래길을 최초로 걸었습니다.

3박4일간 70키로를 혼자 걸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어지며,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하고, 이길로 들어섰습니다.

바래길 초입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용기 있는 친구 이영철의 제2 인생 출발지’라는 표식을 놓고는,

망막한 순간의 많은 이들이 위로받기를 빌었습니다.

 

60년을 살아온 기념으로 이번 함께한 친구들과도

새벽녘 파도 소리에 잠을 깨는 추억도 더하고,

또 앞으로도 기꺼이 얽혀서 행복한 도전을 해나가자고 기약했습니다.

이렇듯 과거뿐 아니라 살아있는 인연과 얽힘이 계속되는 것을 보니,

다시 남해가 부를 듯합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